옴니허브가 직접 답사한 산지의 이야기 입니다.

시골의 재래시장에는 볼거리가 많다.
영천의 장은 더욱 그러한 것이 재래시장과 약재시장이 함께 어우러져 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곳곳에서 팔거리를 짊어지고 장으로 모여든다.
사람들이 저렇듯 많이 모여 사는지, 장날이 되면 도시를 이룬다.

재래시장과 약재시장은 도로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다.
약재골목 앞에서는 조금씩 모아온 약재를 정성스레 정리해놓고 주인을 기다린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수집해온 약재들은 대부분 야생이라 귀한 것이 많으나 요즘은 양도 많이 줄어들었다고들 한다.
농한기가 되면 산에 올라가 약초를 캐곤 했는데, 그 수가 점점 줄어드니 당연히 양도 줄어든다.
재배와 야생은 약성의 차이가 크니 값이 비싸더라도 중병을 다스리는 한의사들과 민간인에게 잘 팔린다.
유근피와 가시오가피만을 가지고 나온이도 있다.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소일거리로 나오신 모양이다. 지구자, 상황버섯, 구기자, 오미자, 상백피, 황기, 더덕, 인삼, 마, 위령선, 골담초, 유근피, 잔대, 자초……
민간약재로 쓰이는 약재가 많이 나온다.

자초도 그 중에 하나인데 뿌리약이라 줄기가 말라 버린 겨울부터 싹 트기 전 초봄까지가 약성이 최고조에 달한다.
자초는 어린아이 팔둑굵기만 되어도 산삼처럼 대접을 받는다.
그도 그런 것이 10년이 되면 어른 엄지손가락 굵기 정도가 되고 2~30년이 되어야 어린아이 팔둑정도 된다.
건재보다 생물로 더 많이 유통이 되므로 살 사람을 먼저 정하고 약초를 캐는 경우가 많다.
방금전에 한 뿌리를 30만원에 팔았다고 제법 굵은 놈을 가지고 온 아저씨의 입담이 거세진다.

산도라지도 이렇게 굵은 야생은 보기 힘들다며 뇌두를 가리키며 재배는 뇌두가 없다고 한다.


가을에 건조된 조협도, 싹이난 맥아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옴니허브에서 겨울갈근을 판매한지 몇 해 지나 너도나도 겨울칡이라 판매할 때도 그랬지만 맥아도 싹이난 맥아가 시장에 유통되기 시작한걸 보니 가슴한켠이 뭉클해진다.

재래시장엔 사람이 많고 약재골목엔 약재를 실어갈 차들이 늘어서 있다.
영천에서 몇해전 한약재 육성방안을 위해 ‘도동유통단지’를 만들어 많은 도매상들이 옮겨 갔지만 아직 정착되지 않고 두 곳에서 동시에 거래가 이루어진다.
도동유통단지는 관광차들이 들리기도 한만큼 시에서 육성하고 있다.


옴니허브에서는 작업하는 약재를 제외하고 수집하는 약재나 선별 약재는 할머니들이 소량씩 모아온 약재를 장날마다 조금씩 모아 작업을 하고 대량으로 필요한 약재는 약재골목에서 선별하여 재작업을 한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중에 우울하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는 병원이나 시장에 가보라신다.
병원에가면 내 몸이 건강함에 감사를 느끼고 시장에 가게되면 사람사는 정이 느껴져서 일까?
매번 장이 열리지만 갈 때마다 새롭고 재미가 있다.
영천장은 2일과 7일에 열린다.
명소를 구경하는 것도 바다 바람을 쐬러 가는 것도 좋지만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한번씩 들러도 좋을 듯 하다.

천마 꽃대가 하나 올라왔으니 구경하러 오라는 전화에  카메라부터 챙겨들고 나선길입니다.
그 보기 힘들다는 천마꽃이 피었다는데…

실물로는 한번도 본적이 없어,  무주 가는길 내내 혹시나 그새 꽃대가 쓰러지지는 않았는지, 며칠 사이에 꽃이 다 시들어버리진 않았는지 급한 생각이 듭니다.

천마 꽃대는 5월 하순에서 6월 초순사이 한때 잠시 올라왔다가 금세 사라져 버리기도 하거니와  꽃대가 올라오는 놈은 번식력을 가지는 것으로 사람으로 치자면 장성한 처녀 총각…
재배를 시작한지 2∼3년은 지난것인데  보통은 그전에 채취해버리므로,  재배를 하는 약재이지만, 꽃을 보기가 힘든 이유입니다.

중국에서 재배법이 들어오기전에는 천마재배는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이걸 안가르쳐줬으면 누가 알고 재배를 해…   하 참∼,  중국놈들 신기하단말이야..”

안내하시는 분은 천마를 재배하신지 몇 년이 지나신 지금까지도 재배법이 희한하신지  연신 감탄사를 늘어놓으십니다.

천마는 뿌리로도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하고, 태양빛을 듬뿍 받아야할 잎도 없는 기생식물입니다.
해서, 영양을 공급해줄 모체가 있어야하는법…
배수가 잘되는 마사토에  30cm정도 길이의 참나무 둥치를 세우고  구멍을 통해 종균을 넣고  종마를  달아준다음 흙을 덮습니다.

습도를 유지하고 그늘진 곳을 만들어주기위해
흙위에는 짚을 깔고  무성한 잎이 자라는 다른 식물들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아래로 자라는 데다 이렇게 위장술까지 쳐놓은 천마밭은  주인이 아니면 누구도 알아보기 힘들겠지요. 천마 재배가 이렇게 보편화되기전,  천마밭 하나면 소한마리 끌고 나온다는 말이있었을만큼 한창 천마가격이 높았을때에는  야생 천마군락이라도 발견하면  다음번에 찾을 수 있는 표시를 따로 해놓아야할 만큼  꽁꽁 숨겨진채 자라는 식물이 또한 바로 이 천마입니다.

바람이 불때는 가만히 있다가  바람이 멈추면 홀로 흔들린다는  천마….
去風止痙 하는 효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흔들리는 바람에도 꼿꼿이 서있는 천마를 보면서 생각해봅니다.

4월 중순의 강원도 정선 일대는 한해 농사 준비로 정말 새참 드실 짬도 없어 보였습니다.

이번에 저희는 강활, 일당귀, 토당귀, 일천궁, 토천궁 등의 새싹 올라오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갔었지만 워낙 바쁘게 일하시는 농민들 모습에 자칫 카메라 들고 찍는 것조차 누가 될까 무척이나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앙증맞게 솟아나는 여러 가지 약초들의 모습을 보고 느끼고, 다가올 여름에 더욱 무성해질 모습을 상상하면서 기분 좋은 며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갓올라온 강활의 새싹입니다. 뿌리부분을 함께 보세요


강활은 중국과 기원 식물이 다르다고 합니다. 아무려나 이곳에서 재배중인 강활(남강활이라고 함)은 강원도 깊은 산속에서 채취한 자연산 모종을 하나씩 하나씩 모아 옮겨 심었다고 합니다. 노력과 땀이 많이 배어있겠지요.

일천궁

토천궁입니다.

천궁의 기원식물을 고증하면 토천궁이 보다 가깝습니다만 약초재배 농가들은 점점 토천궁을 외면하고 일천궁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재배가 용이하고 수익이 높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만 저희가 토천궁을 찾아 사용하고자 한다면 분명 토천궁이 널리 재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당귀입니다.


토당귀의 모습입니다.
사진에서처럼 일당귀와 토당귀는 그 모습과 느낌(感)이 같지 않습니다. 그 약성도 물론 갖지 않겠지요. 이를 구별해서 사용하는 한약재의 범위의 확대가 하루 빨리 정착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고본입니다.
삐죽삐죽한 잎의 모양이 또 뿌리에서 맡을 수 있는 향내가 그 약성을 짐작케 합니다.


백지입니다.
잎이 일당귀 비슷하지요. 뿌리를 씹어보면 얼마나 매운지.. 혀가 얼얼합니다

사실 일천궁이네 일당귀네 뭐 일시호네 일황련이네.. 하는, 또 천황련이네 토대황이네 회우슬이네.. 하는 갖가지 수식어들이 붙는 약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약재를 대할 때마다 두 가지 생각이 함께 드는데 약재의 범위가 자꾸 넓어지는구나.. 각기 다른 장점과 약성을 갖는 약재가 다양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그 다종 다양한 약성을 잘 구별해서 사용해야 할 텐데..하는 어쩌면 섣부르고 건방진 염려가 듭니다. 하나씩 하나씩 정립되어 나아 가야할 부분이겠지요.

독활과 방풍(식방풍)은 또 어떤 모습일까요.. 물론 봄의 모습입니다만.

독활과 방풍.. 역시 말이 좀 있는 약재입니다만 봄에 솟은 이 모습은 정말 보기 좋고.. 반갑고..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어린 생명만큼 보기 좋은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특히 그 성질이 모난 면이 있다는 약초는 더 그런 느낌이 듭니다.

두충나무 심는 것이 유행처럼 시골에 번졌던 일이 있습니다.
한 10-20여 년 전쯤에 말입니다. 그때는 두충나무가 돈이 된다는 소문에 너도나도 노는 땅에 두충을 심곤 했습니다. 하지만 약재 성격상 10년 이상 키워야 상품성을 갖게 되고 생각처럼 경제성이 없어서 요즘엔 꾸어다 노은 보릿자루와 같은 취급을 받는 경향이 있는 실정이지요. 심지어 돈을 안 받고도 저 나무들 좀 베어가라는 사람들까지 있는 편입니다.

이번 여정에 17-18년 된 두충나무 밭을 작업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들러 보았습니다.

생육 환경이 비교적 좋은 곳이라 두충나무들이 키도 큰 편이고 코르크층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얇았습니다. 전기톱으로 밑둥을 베어 큰 둥치는 아저씨가 작은 가지는 아주머니가 숟가락과 밥주걱을 이용해서 훌떡 벗겨냅니다. 깨끗한 속살이 보기 좋으면서도 그렇게 또 미안할 수 없네요.
당연히 요즘처럼 봄철에 나무에 물이 올라 있을 때에라야 수피가 목질부와 쉽게 분리됩니다. 모든 수피류 약재가 다 그렇지요. 잘리운 나무의 단면에서 나이테를 볼 수 있습니다. 기구를 이용해 코르크층을 제거하는 모습도 있네요.

한의사들은 항상 푸른 숲과 들판 속에서 살아갑니다.
약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다시 한번 약장을 봅시다.
약장서랍 속은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향기로운 풀내음이 가득한 자연 그 자체입니다.


2001년4월28일, 약장서랍 속 약재들의 자생지를 둘러보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暖帶로는 위도가 가장  높다는 안면도를 찾았습니다. 안면도에서도 꽃지해수욕장, 그 주변 해안가 낮은 산들을 뒤졌습니다.

산 속을 뒤지다가 어느덧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안면도의 남단 영목항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리고 찾은 민박집은 복음 민박. (이름과 달리 福音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4월 29일, 다음날 아침 민박집 이층에서 내려다 본 마을 풍경은 평화스럽기만 합니다. 멀리 바다가 보입니다.

잊지 못할 조개탕과 영목항 전경- 영목항 바닷가 끝까지 내려오면 현해탄이라는 횟집이 있습니다.
이 집의 조개탕은 평범한 바지락으로 끓이지만 아침 해장으로 먹은 그 맛은 최고였습니다.
(한그릇 5,000 원)

아침식사를 마치고 사구(砂丘 dune)에 자생하는 약초를 보기 위해 ‘바람아래’라는 멋진 지명을 가진 곳으로 향했습니다. 해변에 핀 통보리사초 군락 속에서 한 컷 찰칵 – 경희대 한의대 예과2학년 천남성동호회(?) 여러분과 정재민 식물분류학 박사님 입니다.

사구에서는 별 소득이 없어 다시 백리포해수욕장의 야산을 타기로 했습니다.
산에서 내려다본 바다

그리고 下山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월 31일 영천 보현산 자락
영천의 보현산은 예로부터 채약산이라 불리울 정도로 약초가 풍부한 산입니다.
잡목과 소나무가 적절히 자라면서 약초가 살 수 있는 틈을 내어줄 수 있는 산이기 때문이죠.
예로부터 보현산 자락은 영천이라는 큰 약재시장을 끼고 있어 약초를 많이 재배한답니다.
예를 들면 시호, 천궁, 백지, 삼백초, 어성초, 백작약, 황금, 토대황 …… 인데 다른 지역에 비해 종도 다양한 편입니다. 자, 시원하게 지프차로 보현산 자락을 한번 둘러보실까요.

백지를 심고 있는 광경이군요,
풀 때문에 비닐을 깐 다음 구멍을 뚫고 거기에 씨앗을 2-3개 살짝 묻으면 한달 쯤 지나 싹이 나온답니다.

비포장으로 들어가니 대구와 포항간의 고속도로를 뚫는 암반 터널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길가로 살구나무와 산수유나무에 꽃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개화기에 내린 서리와 한파의 영향으로 꿀벌이 꽃을 찾지 못했답니다.
개화기에 꿀벌이 활동을 못한다면 수분이 되지 않아 열매의 작황이 떨어진다니 올해는 산수유가 아마 흉작이 되겠지요.

자 이제 약초가 심어진 농가에서 기지개를 켜고 올라오는 약초의 힘을 느껴보세요.

작약입니다.

목단입니다. 붉은 싹이 바로 꽃으로 펼쳐지는 특이한 형상이죠.

토대황입니다. 옆 사진은 건조중인 뿌리입니다.

익모초와 토천궁입니다.

백지와 감국입니다.

골담초의 싹이 돋고 독활의 촉이 땅을 뚫고 있습니다.

재래종 백하수오입니다.
오늘의 수확은 경제논리에 의해 사라져 가는 재래종 백하수오의 씨앗을 찾아낸 것이라 할까요?

산길을 넘어 돌아오는 길에 인동등이 나무를 감고 있군요.
멀리 보현산 천문대가 우리를 배웅합니다.

 

황하….

꿈에도 가본적 없던 곳이지만, ‘황하’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고 내안의 친근함으로 다가오는건 학창지설 소지로의 ‘대황하’라는 음악을 통한 만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음악으로 만났던 황하는 밝고 환한곳을 향해 굽이굽이 흐르다가 어느 순간 물길을 잃고 까마득해지고는 망설임과 머뭇거림으로 주저하다 다시 그 흐름을 찾아 장대히 흘러가는 듯 하였다.
마치 황하가 실어다준 비옥한 토양들이 황하문명이라는 찬란함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가, 황하의 범람으로 수많은 과거가, 그 존재들이 사라지기도 하였으나  또한 여전히 그 숱한 세월들을 싣고 유유히 흘러가듯이 말이다.

河南省 약초답사를 떠나는길.

하남성에서 주로 많이 보게될 신이, 현호색, 산약, 우슬, 국화, 백지등에 관한 사전자료를 준비해두긴 하였지만,  하남성에 도착할 때 까지만 해도 우리들의 주 관심사는 懷慶지방의 지황을 제대로 보고오는 일이었다.
그 곳의 지황재배지 환경은 어떠하며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있는 지황(Rehmannia glutinosa)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실제 눈으로 입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지황에 대해서는 뭔가 끝장을 보리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 지황을 만나러 가는 길 어디쯤에 아마도 황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省都인 鄭州를 중심으로 豫라 부르기도 하는 하남성은 豫州에 속해  九州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中州 또는 중원이라 일컬어지는데 중국의 역사문화가 시작되는 商代(은나라)유적지가 발견된 바로 이곳으로 부터 저 거대한 중원문화가 시작된다.

武陟으로 가는 봉고차 안은 오늘 보게될 약재들의 기원과 성상의 구별에 관한 논쟁으로 뜨겁다.
오늘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정주에서 서북방향에 위치한 懷慶지방 또는 懷慶府라 일컬어지는 곳으로 心陽, 溫縣, 武陟, 修武, 博愛를 아우르는 5000Km가 넘는 거대한 황하의 중하류를 끼고 있는 역사적인 古都들이다. 이곳 懷慶지방에는 4대 약재라 하여 회경지방의 懷를 그 이름앞에 두어 懷牛膝, 懷山藥, 懷
地黃, 懷菊花에 대한 재배와 연구가 할발하다한다.

누런 황톳물이 넘실대며 흘러가는 장관에 우리 일행은 지나가던 大橋위에다가 홀리듯이 그만 차를 세우고 만다. 비옥한 황토지를 이루며, 중국 문명의 발생지가 된 황허강의 쿨렁이며 흘러가는 모습은 마치 태고의 울림과도 같이 내 심장의 고동을 자극한다.  ‘물 1말에 진흙이 6되’ 라는 황하강은 말 그대로 황톳물이다.

황허의 물로 적셔진 비옥한 황토땅을 黃地라 한다면 黃泉의 기운을 그 뿌리에 가득 담아올렸다 하여 地黃이라 일컫는다는 지황의 이름은 또 이곳에 얼마나 어울림직한 말인지….
황허강이 실어다 주는 비옥한 땅을 댓가로 이곳은 건조한 기후의 영향으로 인한 가뭄과 화하의 범람으로 인한 홍수를 톡톡히 치루고 있는곳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는법.  모두가 좋기만 하고 또 모두가 나쁘기만 한 것은 이세상 어디에도 없으리라.

무척시 과학기술위원회 앞에서 차는 멈춘다.
마치 유람객과도 같은 우리들의 복장이나 용모가 무색하게, 입구부터 미리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십수명의 사람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양복을 차려입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털고, 닦고, 광을 내신 모습들이 방문객들이 드문 이곳을 찾은 객들에 대한 배려와 호기심, 기대를 그대로 드러내는 듯 하다.
방으로 들어서니 탁자위에는 언제 도착할지 모를 손님들을 위해 미리 차려놓은 다과들이 한상 그득하다.
그중에서 유독 우리들의 눈길을 잡아 끄는 코카콜라병.
차문화가 발달한 중국에서 탄산음료로 손님들을 접대하는 양이 어째 어색하다.
권하기에 맛을 보니, 이건 톡쏘는 콜라맛과 뭔가 조금은 다른 것 같은데..
병의 모양이나 내용물의 색이 영락없이 콜라이며 맛까지 은근히 콜라맛을 흉내낸 이것은 이곳 기술센타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지황음료이다.
나중에 식당에 가서 또한번 우리를 감탄시켰던 것이 지역 특산 약재인 지황뿌리, 잎, 산약,국화등을 재료로 해서 만든 갖가지 요리들이었는데  지역의 약재를 연구하고 활용하는 이들의 노력들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준비되어져있던 지황에 관한 연구자료 비디오 테잎을 보고난뒤,  회경지방의 지황과, 산약, 우슬의 형태와 맛을 본다.
이곳의 특등품 지황은 크기가 어른들 주먹만하다. 단면을 잘라보니 미황색의 국화꽃 문양이 선명하다.  한번 쪄서 말린 건지황의 단면은 오랫동안 고은 교이와 같이 끈적끈적한 진액이 가득차있다.  이 상태로 두어도 잘 상하지 않는다는데  단맛이 강해 그렇다는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건조한 산약의 형태는 설날 뽑는 떡가래 같기도 하고,  굵은 엿가락 같기도 하다.
이것은 光산약이라는 것으로 이곳 懷山藥을 물에 담가 약간 가열한다음 목판위에 놓고 돌돌 문지르면서 건조기킨 것이다.

회우슬은 마치 황기와 같이 뿌리가 곧고 곁가지가 없으며 육이 충실한데 우슬의 쓰고 신맛을 각오하고, 뿌리를 조금 잘라 맛을 보니 의외로 고소하고 단맛이 입안에 남는다.
이곳의 기술자?학자?중의사분들과 우리 일행간의 토론이 이어졌다.
주로 이곳 4대 약재들의 재배현황, 생산기술, 가공현황 등등에 관한 실정과 연구정도, 그리고 임상효과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렇게 계속 되는 이야기들은 아마 그 끝을 찾기가 힘들 것 같다.
오후에 재배지를 둘러보아야 할 일정으로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재배지로 가는 길가 도로에는 주황색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다름아닌 옥수수알들.. 이렇게 길가에 내다 널어놓은 옥수수들은 주로 동물들의 사료로 이용된다고 한다.
온 가족들이 모두나와 옥수수 낱알을 털고, 널어 놓은 옥수수알들을 뒤집고, 또 때로는 우두커니 지키고 앉아 있는 모습들이 정겹다.
이곳 사람들은 경계심보다는 호기심으로 우리를 대한다.

재배지에 도착…

지황밭이라고 도착한 곳인데 멀리서 봐서는 배추밭으로 알아볼 만큼 지황잎이 크고 무성하다.
우리나라 지황밭의 마치 땅에 바짝 엎드려 포폭을 하고있는 듯한 형상과는 영 딴판이다.
국산 지황의 잎이 작고 두터우며 솜털이 보송보송 묻어있다면, 이곳의 지황잎은 우선 크기가 크고, 두께가 얇으며 솜털이 적다.
뒷면은 붉은 자색을 띄고 있으나 잎맥에는 별로 붉은빛이 드러나지 않는다.
뿌리를 캐어보니 역시나 어른 주먹만한 놈이 마치 고구마처럼 하나 달랑 달려있는데 국산 지황을 한 뿌리 캐어본 사람이라면 으레히 길쭉한 지황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을것이라 짐작하고 캐어보았다가 그 모양새를 보고는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한 덩어리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될 것 같다.  

우슬은 지상부의 생김은 크게 차이가 없으나, 줄기 마디 부분이 툭 불거져 나오며 아주 붉은 선홍빛을 띄고 있는 것이 牛膝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걸맞게 느껴질수가 없다.
뿌리부분은 역시 과학기술위원회에서 본 샘플과 같은 형태로 마치 황기와 같이 죽 죽 뻗은 직근의 형태이다.
한 때 잠시동안은 중국의 회우슬이 국산 황기로 둔갑하여 유통되었던 적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때만해도 우리나라의 우슬뿌리만 머릿속에 그려져 있던 나는 ‘무슨.. 아무리 약재를 모르는 사람들이라지만 그렇게 형태가 다른걸 어찌 분별을 못할까..’ 속으로 혀를 찼더니만.  회우슬의 모양새를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산약과 국화재배지 까지 둘러보고 돌아오는길의 차안은 방금 본 약재들을 가지고 어떤 때는 어떤 기원의 약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냐 하는 논쟁이 한창인데 지황은 워낙 국산 지황과 달라 고개가 갸우뚱해지지만, 우슬 하나만은 제대로 봤다는 생각에 모두들 득의양양이다.
補肝腎?强筋骨 하는 작용을 갖기위해서는 川우슬(Cyathula officinallis)이나 土우슬(국산 쇠무릎 Achyranthes japonica) 보다는 두껍고 肉이 많으며, 그 맛을 보면 단맛이 입안에 감도는 회우슬을 사용하는 것이 옳으리라는 의견에선 모두 만장일치를 보았다.

차는 어느새 시골장의 한 가운데를 헤치면서 지나고 있는 중이다.
갖가지 난전에는 과일이며 채소, 자질구레한 생활용품들까지 총동원이고,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국수(?)차앞의 길게 이어진 걸상에는 국수그릇에 고개를 박고있는 손님들로 만원이다.
구두수선, 이발난전 까지 있더니 급기야는 치과까지 난전을 벌여놓았다.
난전 치과라고 해야 의자 하나에 희안한 기구들이 널려있는 펼쳐놓은 가방하나, 그리고 이뽑는 사람과 이를 뽑기위해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하늘을 향해 있는대로 입을 벌리고 있는 이뽑힐 사람이면 끝이다.
모두들 여전히 차내토론이 한창들이고, 달리는 차안이라 카메라 셔터도 마음대로 눌러대지 못하는 내 마음만 애닮다.

이튿날..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오늘은 소림사를 둘러싸고 있는 嵩山에서 약초꾼들을 만나 爬山을 해보려 하였건만..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소림사에 가까워질수록 빗줄기가 거세지고. 이런날은 파산이 아니라 관광도 힘들겠다.

 하릴없이 소림사 부도탑림과 경내를 둘러보고, 아쉬운 마음에 소림사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각종 秘方(주로 타박상과 골절상을 다루려나?)들이 실린 책이라도 혹여 있으려나 기대해보았지만 기념품 가게는 줄을 이어 섰어도 서점은 찾을수가 없다.

 


숭산은 하도 험해서 날이 좋아도 오르기가 힘드니 그냥 돌아가자는 안내인과 운전기사분의 손사래를 모르쇠하고 억지로 숭산으로 향하긴 하였으나, 숭산입구에는 약초꾼들은커녕 중국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뭐라도 하나 내다놓고 팔고있는 장사꾼들 조차 보이지 않는다.
쏟아지는 비를 우산으로 막느라 숭산의 기세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보기에도 험한 저 돌산을 오르기는 역시 무리겠구나. 게다가 모두들 비를 많이 맞아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하는 몸으로는 .. 아쉬운 마음으로 차를 돌린다.

 지황을 보기 위해 멀리도 떠나온 여행이었지만.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회우슬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기대가 많으면 실망도 큰 법이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선물을 받았을 때의 기쁨이란…
계획할수 있고, 예측가능한 일들이 척척 벌어질때의 순조로움 보다는 오히려 우리도 어찌할수 없는 힘에 이끌려 생기는 우연이라는 요소들에 의한 흥미진진함 그 윤택함들에 점수를 더 주는 나에게는 오히려 이런 만남이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  

 함께 약초답사를 떠났던 본초학 교수님들, J박사님, 현지 약재공사를 소개시켜주기 위해 함께 해주셨던 D생약의 사장님, 그리고 우리일행.. 모두 조금씩은 다른 이유들을 가지고 출바한 여행이었지만, 올바른 한약재를 위해서라는 목적지를 향해 함께했던 첫 발걸음이었다.

 

사인의 향기를 쫓아 조용한 은둔의 나라, 잠에서 이제 막 깨어나려고 하는 나라, 세상에서 제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나라, 착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나라 라오스를 찾아 갑니다.

라오스의 사인의 주요산지

 남부산악지대 :
팍세(Pakxe)

중부 산악지대 :
 라오바오(Lao Bao)

북부 산악지대 :
루왕 푸라방  ( Louang Phrabang)
루왕 남타 ( Louang Namtha)
퐁사리 (Pongsali)

방콕을 경유하여


아! 메콩강

인도차이나반도에 메콩강을 빼고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으랴.
라오스의 계절은 두가지로 느껴집니다.
비가 오는 계절인 우기(4월말- 8월말)와 비가 오지 않는 계절인 건기(9월- 4월)입니다.
우기에 지독시리 내리는 비를 담아내야 하기에 메콩강은 그만큼 크고 길고 넓은가 봅니다.

사인은 라오스 소수민족의 삶의 터전인 산악지대에서 주로 채취됩니다.
우기엔 길이 질퍽거려 차량통행이 어렵습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어디서나 똑같은가 봅니다. 사람과 짐승이 한가족처럼 살아갑니다.
더불어 사는 돼지가족도 예쁘군요… 


라오스 산악 밀림속의 사인


뿌리에서 곧추 올라온 외줄기에 대나무 잎 같이 생긴 잎들이 어긋나게 달려있습니다.
땅속의 뿌리는 대나무 뿌리처럼 서로 연결되어 번져 나갑니다


사인은 열매가 뿌리에 달리는 독특한 형태로 축사밀(縮砂密)이라고도 합니다.
5월에 뿌리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기 시작해  우기를 견디며 성숙하다가 우기가 끝나는 8월말부터 채취해야 사인의 약성을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질퍽거리는 땅의 습기를 견디며 익어 가는 사인의 라이프 사이클은 健脾化濕 理氣安胎의 약성을 짐작하게 합니다.

사인의 채취와 건조

사인은 채취 시기와 건조방법이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보통 우기에 채취한 미성숙한 사인은 약성이 떨어질뿐더러 건조가 충분히 되지 않아 곰팡이가 필 확률이 높아 주의 깊은 감별이 요구됩니다. 반드시 우기가 끝나길 기다려, 채취하고 건조하도록 산지의 주민들을 잘 설득하여야 하겠습니다.

사인은 껍질째 대나무 건조대에서 말리고 아래에서 불을 때어 연기로 건조시킵니다.


사인은 한의학에서 방향화습약(芳香化濕藥)으로 분류되어 체하여 명치와 배가 아프고 그득할 때, 게우거나 설사, 이질 그리고 태동불안 등의 증상이 있을 때 요긴하게 사용되는 한약재입니다.

기원식물이 되는 양춘사(陽春砂), 해남사(海南砂), 축사(縮砂)는 남방계식물이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고, 중국의 남쪽지방이나 라오스, 태국, 미얀마 등지에서 생산됩니다.

성숙한 사인의 껍질을 벗기면 홍갈색이나 짙은 고동색을 띤 향기로운 종인이 나오는 데 씹어보면 약간 매운 듯 하며 화한 향내가 입안에 감돌게 됩니다. 그런 방향성 성분이 체기를 내리고 비위를 데워주며 보(補)해주고 임신시의 태동불안 등을 해소하는 작용을 나타냅니다.
 

후기 : 라오스는 지구상에서 아직 오염되지 않고 남아있는 몇 나라중의 하나입니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지만 자본주의의 입맛에 맞게 상품을 가공하고 포장하는 능력은 아직 부족합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내륙에 위치한 라오스에서 머나먼 우리나라까지 최상품의 한약재 <사인>을 생산하여 수입하기 위해선 현장에서 뛰는 많은 한국인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오지에서 주민들을 만나 채취시기와 가공방법을 설명하고 또한 안정적인 원료의 확보를 위해 사인을 재배하는 방법까지 지도하고 있는 그 분들의 노력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검정색과 빨강색이 만나면 보라색이 될까?

紫草의 보라색은 그런 만남이다.

紫草를 캐보면 紫草뿌리의 외피는 검정색을 주로 띠고 조금만 외피를 긁으면 빨강색의 내피가 나타난다. 년수가 낮을수록 빨강색이 선명하고 년수가 오래되면 검정색이 강해진다.
건조가 되면서 점점 자주빛으로 변해진다. 마치 붉은 선혈이 점점 말라 가면서 흑자색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약초를 대하면서 약초가 외면으로 나타내는 색깔과 약초의 약성과는 너무나 많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色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리와 질서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 나름의 의미가 분명히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芍藥의 라이프사이클에 나타나는 붉은 색, 丹蔘의 입술연지 같은 붉은 색, 蘇木의 붉은 나무결, 핏빛 심장을 뭉쳐놓은 것 같은 기린갈의 수지인 血竭, 牧丹의 검자줏빛 외피, 鷄血藤의 색깔 등등 모두 혈분에 들어가 보혈, 생혈하거나 활혈화어하는 즉 血과 관련된 주치를 가지고 있다.
물론 많은 예외도 있을 수 있고 색깔만 가지고 약성을 평할 수는 없겠지만 약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단초가 색깔을 관찰하는 데서도 발견될 수 있으리라.

한의과대학을 들어온 누구에나 뭔가 신비한 약초에 대한 관심들은 있기 마련이다. 동양의 학문을 공부하다보면 뭔가 불로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같은 것 말이다.
나에게도 역시 그러한 것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지치로 불리는 紫草였다.
팔십 먹은 노인이 오래 묵은 야생자초를 달여먹고는 삼일 동안 취해 잠만 자다가 깨어나서는 홍등가의 아가씨 화대가 얼마인지 물었다는 이야기라든가, 불치의 병을 앓던 이가 야생자초만 구해 달여 먹고는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 하물며 신경통엔 지치술이 최고라던가 하는 등등 민간에서 자초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자초는 겨울 눈 덮인 산에서 주로 캐는데 오래 묵은 자초가 있는 곳은 주위의 눈이 붉그스레하게 녹아 있어 캐는 이는 그것을 보고 찾아낸다는 등 자초는 신비스러울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약초였다.

그러나 야생 자초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끔 장터에서 미끈하게 잘 빠진 재배된 자초가 보이긴 했지만……
내가 약초꾼 강씨를 처음 만난 것은 경북 영천의 장날에서다.
영천의 장은 아직도 큰장의 면목을 유지하고 있어 장날이면 전국각지의 상인들이 농산물과 약재를 거래하려고 모여든다.
소란한 장날 부산한 시장의 한 귀퉁이에서 이상하게 생긴 통통한 약초 몇 무더기를 놓고 추운 듯 쪼그리고 앉아 있는 50대 중반의 남자가 보였다.
어린아이 팔뚝 굵기만한 흑자색의 약초뿌리가 궁금하여 이름을 물어보니 지치라고 한다. 가격을 물어 보니 한 뿌리에 30만원이란다.
드디어 야생자초를 발견했다는데 한번 놀라고 가격이 이렇게 높은데 다시 한 번 놀랐다.

야생의 자초는 굵기와 년 수에 따라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정확하게 년 수를 알아낼 수 없지만 보통 생체일 경우 10년 이상이면 엄지손가락 보다 조금 더 굵은 정도의 굵기가 되고 20년, 30년으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굵어져 어린아이 팔뚝만큼 굵어진다. 오래되면 속이 썩어 물이 차는 경우가 많아 캐내면 물이 말라 버려 중량이 감소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임자를 물색한 다음 캐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마치 산삼 캐는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씨가 떨어져 자초의 형태를 이루면 3년생이 되니 보통 흔하게 캐는 것은 4∼5년생이 제일 많다고 한다. 강씨를 졸라 함께 자초를 캐러가기로 약속을 받아내곤 헤어졌는데, 아무래도 30만원짜리 야생자초가 탐이나 여기저기 돈을 구하여 다시 찾아가니 이미 없었다.
주위에 물어보니 내가 가자마자 임자가 나타나 팔고 갔다는 것이다.
아, 물건의 임자는 따로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다음 만날 것이 궁금해졌다.

아침 8시에 의성의 아파트 앞에서 강씨를 만났다.
저번처럼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는 이 사람들이 왜 자기와 더불어 산으로 가려하는지 궁금한지 자꾸만 쳐다본다.
약초를 캐서 생계를 이어온 지 벌써 30년, 그 동안 의성에서 자기와 더불어 약초를 캐오던 2∼30명에 달했던 약초꾼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어 사망하거나 약초캐기를 포기해버려 남아있는 사람은 자기 외에 한 사람 정도가 더 있다고 한다.
약초를 캐서 자식 공부까지 시켰다는 강씨는 우리 시대의 몇 안 되는 전업 약초꾼이었다.

의성에서 927번 지방도로를 따라 신평으로 가는 동안 경북의 내륙에 이렇게 깊은 골들이 많이 있나 새삼 느껴본다. 예전엔 이렇게 넓고 깊은 산과 골들에서 수많은 약초가 캐어졌을 것이고 지금은 여기가 주인(약초꾼)이 없는 무주공산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아쉬운 감회가 든다.
강씨의 말이 이제는 약초꾼이 없어 혼자는 먹고 살만 하단다.

이윽고 산밑에 도달한 강씨는 휘적 휘적 산을 오른다. 깡마르고 구부정해서 약해보이는 강씨이지만 산에서는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여유롭게 산을 오른다.
뒤쳐지는 우리를 생각한 듯. 길이 없는 곳을 약을 캐는 곡괭이로 길을 잡아주고는 조심하여 따라 오란다. 뒤따르는 우리는 벌써 숨이 턱에 받혀 오른다.

아직 삼월 초순이라 쌀쌀한 날씨다. 곳곳에 녹지 않은 눈들이 쌓여 있다.
산의 8부 능선쯤에서 강씨의 시선이 바빠진다. 소나무군락이 참나무군락에 밀려 올라간 경계선에서 소나무가 있는 지역쪽으로 지치가 잘 자란다며 주변을 둘러본다.

드디어 강씨의 신호가 왔다. 자초였다. 줄기가 말라 있어 도감속의 자초와는 달라 보였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니 적갈색의 솜털이 난 줄기이며, 주위에 떨어진 말라버린 잎에 난 잎맥이 바로 자초였다. 도감에서 보지 못한 하얀 씨앗들이 새싹의 눈처럼 졸망 졸망 달렸다.

8부 능선에서 정상까지 드문 드문 자초를 발견하며 올라갔다.
자초는 한 곳에서 발견되면 주변에 1∼2미터의 간격으로 2∼3뿌리가 모여 있다.
자연적으로 씨앗이 떨어져 자란 형태라고나 할까?
한뿌리에 줄기가 여러 개가 올라온 것은 뿌리가 굵고 해서 년 수가 좀 오래된 자초임을 알겠다.
눈속에 둥글레가 까만 열매를 달고 있고, 삽주도 바삭 마른 채 눈밭에 떨고 있다. 반나절 동안 세 사람이 열댓뿌리 정도를 캔 것 같은데, 내가 캔 것은 고작 한 뿌리다.

강씨의 말을 빌리면 자초를 하루에 바짝 캐면 생체 2∼3근 정도를 캐는 데 작은 것은 돈이 안되고 10년 이상된 것을 캐야 돈이 된다고 한다.
10년 이상된 것은 주로 한약방이나 개소주집으로 팔려나간다고 하는 데 한의원이 주 소비처가 아니라는 사실이 뜻밖이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과연 귀한 야생약초의 주인은 누구여야 하는지 되씹어본다.

1999년 5월 27일 우리는 9박10일의 일정으로 중국의 신강성으로 갔다.


사막에 사는 육종용과 쇄양이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육종용은 사막의 인삼이란 대우를 받고, 쇄양은 興陽이란 별칭을 받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약효를 갖고 있지만 그 산지가 워낙 멀리 있다보니 한의사의 주목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는 약재이다.
하지만 난 그 친구들의 뛰어난 약성에 마음이 끌려서라기보다 그들이 그렇게 까마득한 거리에 살고 있다는 그 자체가 좋았다.
비행기로 베이징까지 날아가 다시 가장 빠르다는 열차 특쾌를 타고 3박4일을 간 다음 거기서 다시 차를 대절해 3∼400km를 달려가야 만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나에게 분명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어느 하늘밑 잡초 무성한 언덕이어도 좋아,
어느 하늘밑 억세게 황량한 벌판이어도 좋아,
공간 가득히 허무가 숨쉬고, 그리고 하늘 밑 어디에라도,
내 시선이 뻗어 저 무한의 거리가 까무러치도록 멀어서 혼자서만 외로워하는 그런 곳이면 좋아…”

80년대 초 대학가요제에서 잠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사라져간 노래의 가사처럼 난 가끔 아주 까무러치도록 먼 곳으로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대고 시선 줄 곳은 아무 데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 한번 서 있어보고도 싶었다. 가슴을 휘돌아 몰아쳐 오는 미친 듯한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 세상의 끝까지 질주해 보고 싶은 유혹이 나를 전율하게 한다.

돌려짓기로 재배해야

출렁이는 침대칸에서 막 눈을 뜨니 차창으로 거대한 흙더미에 굴을 파고
문만 달랑 달아놓은 흙집들이 보였다 사라졌다한다.
여기가 어디인가. 지금이 몇 시인가.
아침 8시경이다. 주위에 물어보니 이제 막 낙양에 도착한단다. 옛 고도를 통과하며 차츰 정신이 든다.
북경발 우루무치행 밤열차에 몸을 실은 우리들은 황량한 사막으로 간다는 흥분에 휩싸여 밤새 주절거렸다.
오랫동안 약초재배를 해온 조선족 박영감은 통역겸으로 우리와 합세하였는데, 약초를 재배하는 데 가장 좋은 씨앗은 야생에서 씨앗을 받아 첫 세대만 재배하고 다음 세대는 재배하지 말라고 한다.
첫 세대 말고 다음 세대는 반드시 약해진다고. 약초는 반드시 돌려짓기로 재배해야 한다고도 한다.
안국시장의 정경리도 한마디한다.
북경의 제약청에서 1년에 육종용 3∼400t을 갖다 쓰는데 신강의 약재 라오반이 때마다 많은 사람을 데리고 사막으로 들어가 캐 나온다고 한다. 중량을 높이려고 소금을 먹여 재운다고 한다.
곤륜산 남부에서 나는 육종용은 목질이 많고 곤륜산의 북부는 육질이 많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몰라도 뭐가 중요한가. 좁고 흔들리는 침대칸에서 남자들 여럿이 모여 술이야기, 군대이야기 여자이야기 옛날이야기 등등 되는 대로 지껄여 가며 밤을 지내왔다.

황토의 바다를 통과하며

오후 2시경 西安을 지나고 5시가 되자 황하의 지천을 통과하는 듯 황토물이 흐르는 강들이 보인다.
어떻게 강물이 이렇게 시뻘건가.
예전 히말라야 산록을 타고 내려오는 얼음 녹은 인더스강물이 연초록임을 보고 의아해 했지만, 황하의 시뻘건 강물 역시 우리네 상식을 깨트려 버린다. 지금 통과하는 이곳은 거대한 황토의 바다다.
가끔 담틀집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황토와 더불어 살아가는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이 보인다.
저녁이 되면서 감숙성으로 들어가는 듯 지세가 험해진다. 깍아지른 산들을 뚫고 철길은 달리고 해발 3000m가 넘는다는 높은 산엔 계단식의 밭들이 주름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강우량이 적고 건조하여 중국에서도 가장 빈곤하다는 성이 감숙성이다.

 주름모양으로 그려진 계단식 밭

당귀니 대황이니 하는 약재의 주산지가 되는 이유가 농사보단 고산의 약초가 오히려 재배의 적지가 됨을 높은 산에 그려진 계단식 산들을 보니 알겠다.
정경리가 文峰中藥材市長에 가면 감숙성산 약재를 주로 판매한다고 하면서 한번 가보자고 한다.
창문에 머리를 박고 차창 밖을 내다보니 어둠이 짙게 깔린 바깥은 희뿌연 하늘과 흙산이 대비를 이루며 끝없이 펼쳐간다.
아, 감숙의 산야를 이렇게 지나는구나.
다음날 아침 침대칸의 덜컹거림으로 자연스럽게 눈을 뜨니 아직도 황토언덕과 흙산들이다. 흙산과 단조로운 구릉 그리고 아주 가끔 보이는 집들은 서북풍의 몰아치는 거센 바람을 피하기 위한 듯 납작한 성곽형태로 지어져 두터운 흙담으로 막아 놓았다. 한국의 흙집에서 느끼는 포근함과는 전혀 다른 황량하고 적막한 느낌뿐이다. 눈만 뜨면 보이는 적막한 강산을 계속하여 대한다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어떻게 변할까.
중국의 서북지방을 철마로 가로지르며 素問의 異法方宜論을 떠올린다.
단조로운 하늘과 땅들이 하루 이틀 계속 반복되는 동안 난 서서히 기가 질리고 있었다. 광활한 땅들이 오히려 답답한 감옥처럼 옥죄여 오고 황갈색의 단조로운 색깔에 둘러싸인 이 공간이 끝이 없는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듯 어느새 내 가슴에 寂寞無朕의 암담함으로 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막의 내음이 실려오고

43시간을 달려 드디어 중국과 서역의 경계인 가곡관에 도착했다.
서역으로 가는 마지막 이별의 장소인 가곡관 저 너머로 사막의 내음이 실려오는 듯 하다.
열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어대는 키다리 아가씨의 해맑은 미소가 별나게 아름다워 보인다.
마치 땅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땅이 하늘과 닿아 지평선을 이루고 있는 아득한 먼 곳에 시선을 던지고는 석양이 내리고 어둠이 깃들 때까지 내내 창 밖을 바라보았다. 촛점이 맞춰지지 않아 아련할 수밖에 없는 대지를 바라보려니 그냥 눈물이 나온다.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움직임이다. 무엇이 나를 뭉클하게 하는가. 태고의 적막이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나의 어느 부분을 건드리는가?

어느 누군가 발정 난 말의 정액이 뿌려진 자리에서 육종용이 돋아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난 육종용의 생태를 한번도 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 말을 믿었고, 육종용 정도라면 그 정도는 되지 않겠느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발정 난 말의 대포 같은 성기를 상상만 해도 육종용의 힘이 얼마나 놀라울까를 그려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약초를 둘러싼 이와 같은 이야기는 비단 육종용뿐만 아니다. 옛날 즐겨 보았던 무협지에서뿐만 아니라 역대로 내려오는 본초서에조차 약초에 대한 효능이 지나치게 신비스럽게 포장된 부분이 끼어져 있다.
불로초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이 약초를 신비화시켰을 부분도 있고, 더군다나 교통이 나쁘고 정보의 전달이 어두웠을 옛날이라면 본초가라 하더라도 그 많은 종류의 약재들의 현장들을 일일이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강성까지 4000km를 뛰어 넘어 가는 이 길은 어찌 보면 약초에 대한 그와 같은 환상을 깨어주기 위해 가는 냉정한 길인지도 모른다.

‘움푹꺼진 땅’ 투루판

신강성을 통과할 때 보이는 것은 그저 자갈과 모래언덕과 그리고 여기에 한때 사람이 살았을 거라고 추정되는 모래무덤들뿐이지만 일출의 광경은 역시 스펙타클하다.
일출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사막 속의 도시 吐魯番에 도착했다. 위구르어로‘움푹꺼진 땅’이라는 뜻의 투루판은 여름철 온도가 42℃까지 올라가는 도시로 모래에 달걀을 묻으면 달걀이 익는다고 한다.
반면 겨울철은 영하 30도에서 35도의 혹한이 찾아와 기온의 차이가 아주 심한 곳이다.
기온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아 투루판의 과일은 당도가 높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특히 포도는 재배역사가 2000년이나 된다고 하는데 우루무치의 시장 곳곳에서 투루판에서 재배한 씨 없는 건포도를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투루판역을 통과하면서 차창 밖으로 보여지는 투루판의 풍광은 가난에 찌든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역무원의 의복도 남루하고 사람들의 몰골도 초라한 것을 보니, 허지만 사람들은 얼굴들은 모두 순해 보인다.

아니 여기가 天山인가?

아침이 되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침대칸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서니 사람들이 차창에 붙어 사막의 저 끝을 쳐다본다. 멀리에서 머리에 흰눈을 뒤집어쓴 설산들이 보인다.
이 메마른 사막에 웬 설산인가. 아니 여기가 天山인가. 위치상 천산은 아닌 듯 한데…. 오랫동안 황량한 모래사막만을 보고 오느라 지친 승객들은 멀리 설산을 보고는 제각기‘장관이다’라고 소리친다.

우루무치에 도착하기 1시간 전 갑자기 풍광이 바뀌어 아름다운 초원이 나타났다. 삭막한 사막은 사라지고 초원에는 양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간간이 물이 흠뻑 고여있는 습지도 나타난다. 습지 주변엔 큰 나무들이 무성해 많은 그늘을 만들고 주변엔 꽃들도 만개해 있다. 아! 이것이 오아시스인가. 옛날 사막을 횡단하던 대열이 여기를 보고는 얼마나 기뻐했을까!
나무와 초원과 그리고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있는 쉼터, 오랫동안 사막을 가로질러온 여행객들에게 이곳은 바로 낙원에 비유할 수 있는 곳 일게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아 정말 좋구나. 정말로 아름답구나.

우루무치 주변지역은 소금기가 묻어 있는 땅들이 많다.

강가엔 소금이 말라붙어 하얀 덩어리들이 보이고, 염분이 많은 호수에선 소금을 만드는 염장이 있었다. 육종용도 소금기가 많은 땅에 자라는 것은 잘 변질이 안되므로 일부러 소금기가 많은 강물에 씻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사정을 아는 상인들이 중량을 늘리기 위해 염분을 가하는 것인 모양이다.
정확히 아침 10시에 우린 우루무치역에 도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루무치에 도착하니 우루무치는 사라지고 없었다.

우루무치 없는 우루무치

‘아름다운 목장’이란 뜻으로 예부터 소와 양떼를 몰고 다니는 많은 유목민족들이 모여 살았던 초원지대인 우루무치는 사라지고 중국의 여느 도시와 같이 높이 솟은 현대식 건물과 복잡한 거리, 빵빵거리는 차들의 소음으로 가득찬 중국의 현대도시 하나에 우린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거리를 둘러보니 심지어 서울보다 더 많이 외국의 유명 옷 브랜드가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장을 둘러보니 건포도 ,어린애 주먹만한 크기의 왕대추, 그리고 한번도 보지 못한 과일들을 파는 가게와 유목민들이 좋아하는 각종의 칼들이 장식된 칼집과 함께 날이 시퍼렇게 선 채 팔리고 있어 여기가 위구르족 자치주인 신강성의 성도 우루무치인 줄 깨닫게 해준다.

저녁에 서커즈(石詞子)市에서 오신 진선생을 만났다. 진선생은 서커즈市 약재공사에서 육종용을 수집하는 사람으로 우리를 육종용이 있는 사막으로 안내해 줄 사람이다.
진선생으로부터 신강성이 의외로 다양한 약재가 나는 곳이고 육종용 쇄양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구기자, 홍화, 마황, 감초등의 특산이 있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신강성에서의 육종용의 산지는 石詞子가 50t으로 제일 많고 托里가 20∼30t 소수민족이 사는 古니圖가 10∼20 t 으로 도합 100여 t 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캐는 사람이 없어서 채취량이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린 양젖을 발효시켜 만든 우유 같은 술에 취한 채 오랜만에 흔들리지 않는 침대에서 골아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