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은 사슴뼈로 만든 도구를 쓰면 삼을 파헤치는 과정에 삼이 상하지 않고 썩지 않는다고 한다. 루구챌의 붉은 댕기를 보며 장백산 인삼에 관한 만족들의 전설을 떠올린다.

목단강 상류에 허씨라는 지주가 도사를 청해 자기의 산에 보삼(寶蔘)이 있는지 없는지 봐달라고 부탁한다.
도사는 향안(香案)에 맑은 물 한 그릇을 떠놓고 허리춤에서 ‘퉈리’(만족어로 神力이 있는 거울을 말함)를 꺼내 비춰보더니 보삼 앞에 왜 닭이 어른거릴까 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주인은 식구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닭띠는 하나도 없다. 이번엔 일꾼들을 살펴보았다. 그중 말몰이꾼 치무가 닭띠이다. 주인은 치무를 데리고 ‘방산’을 간다.

어느 날 치무는 아름다운 인삼을 만나게 된다. 인삼에 담배쌈지를 맸던 붉은 끈을 둘러놓는다. 금방까지도 청초하던 인삼이 기운을 잃고 머리를 떨어뜨린다. 인삼도 자기 죽을 날을 아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불쌍해서 붉은 끈을 거두어 들였다. 그러자 인삼은 금방 정신을 차리며 씩씩해진다.
그 후부터 치무가 힘든 일에 부딪칠 때마다 붉은 망울꽃을 머리에 인 오허다라는 처녀가 나타나 도와준다. 치무는 주인집을 떠나 오허다와 결혼한다. 오허다는 아들 여덟을 낳는다. 주인은 뒤늦게 오허다가 인삼처녀라는 것을 알고 그들이 사는 집에 붉은 끈을 두른다. 치무와 오허다는 말을 탔지만 그 붉은 끈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여러 곡절을 겪고 나서 치무와 오허다는 인삼자식들을 거느리고 장백산으로 도망한다. 그래서 지금 장백산에는 치무와 오허다가 낳은 인삼자식이 끝없이 많다고 한다.

인삼은 땅의 정기를 받았기에 토정, 지정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중국의 《광오행기》의 기록에 의하면, 수나라 때에 한 사람이 밤이면 창문 밖에서 부름소리를 듣곤 했다. 이상해서 나가 보았더니 이상한 풀이 자라있었다.
그것을 뽑았더니 모습이 사람을 닮아 머리가 있고 목이 있고 사지가 있는 아름다운 인삼이 나왔다. 그것을 정히 집에 보관했다. 그 날부터 더는 부름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삼이 땅의 정기를 받았다는 것을 한층 증명하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인삼이 머리와 팔과 다리를 하나하나 드러내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드디어 인삼이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형태는 사람 같고, 공력은 천지(天地) 같다.”라는 말 그대로 모습이 그야말로 사람을 똑 닮았다. 삼형(蔘形)도 잘 나와서 20여년을 땅속에서 지낸 보람이 있었다. 자연이 어쩌면 인간에게 이처럼 큰 선물을 내릴 수가 있을까, 생각할수록 자연이 감사하다.

돌아올 때에는 대릉장산의 길이 빗물에 씻겨내려 산을 내리기 힘들었다. 나는 두 번이나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산을 내리고 외나무다리를 지나서 도로에 들어섰다. 그동안 길은 더 엉망이 되었다. 말이 길이지 강물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와중에도 오랜만에 빗물에 발을 적신 아흥(雅興)이 남아있어, 억수로 쏟아지는 비 줄기를 맞으면서 험상궂은 고목과 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기사가 예견했던 대로 길은 험하게 밀려있었다. 정말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느 시골집에 머물러있으면 어쩌나 근심이 앞섰다. 너무 험하게 밀린 길이 앞에 있을 때면 오명주 씨가 먼저 물 속에 뛰어들어 차를 지휘했다. 말이 씨가 된다고 누구 하나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차가 뒤집힐까봐 걱정이다.

길은 다섯 곳이나 물에 밀려 작은 강을 이루었다. 기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일행은 “화이팅!”을 외치며 기사를 응원했다. 한군데를 순조롭게 지날 때마다 기사에게 박수를 보냈다. 기사의 기술이 높은 덕에 무사히 안전지대에 이르렀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배고프다는 소리들이 나왔다. 시간은 오후 네시였다. 비는 무엇이 사무친지 여전히 하염없이 내렸다. 누군가 오늘의 곡절이 장수하늘소를 노엽힌 탓이라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천의요! 인간이 하늘이 내린 신초를 보러 온 것인데 하늘이 쉽게 길을 열어주겠어요?” 라고 신 교수가 대답해 모두들 금방 그 말에 동의했다.

과장적인 비유가 되겠지만, 당승이 손오공 등과 함께 서행하여 경을 가지러 갈 때에도 요귀와 싸우며 온갖 곡절을 겪었던 것을 보면, “천초지령, 백약지장”의 인삼을 만나는 길이 순조롭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듯 하다.
배낭 속에 있는 장수하늘소가 들었으면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생각은 세상을 바꾼다. 세상이 바꿔지지 않더라도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꾼다. 그 동안의 고생을 삼의 신기(神氣) 탓으로 달갑게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져서 모두들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다. 늦은 점심을 먹은 탓도 있을 것이다.

안도의 한 시골에서 서양삼장을 돌아보고 다시 연길 방향으로 달렸다.

밖은 여전히 비가 사무치게 내리고 차안은 점점 어두워왔다. 창밖 풍경은 차를 스쳐 끝없이 뒤로 물러나는데 차안은 정적이 깃들었다. 옷이 젖은데다가 몸이 피곤해서 모두의 머리가 의자 등받이 위에서 흔들흔들 춤을 추었다.
나는 조금 졸고 나니 정신이 맑아져서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보았다. 뽀얗게 밤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창 밖이 차안보다 밝아 무성의 흑백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듯 하다. 창문에 서린 김을 닦아냈다. 비가 내리고 밤이 내린다. 몽롱한 기운 속으로 산들의 선이 기복을 이루며 흘러 지났다. 그 풍경이 어떤 언어인 듯 음악인 듯싶어 나는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다. 의자 등받이 위에서 춤을 추는 일행들의 머리도 하나 하나의 음부(音符)인 듯 한데…

춘하추동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른 채 글 쓰기에 시간을 죽인지도 꽤 오래됐다. 정말 오랜만에 산행을 했다. 오랜만에 이렇게 평온한 심정으로 경물을 바라보고 감상하고 음미하고 있다. 일상에 마음도 몸도 많이 지칠 때면 배낭 하나를 달랑 메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멀리멀리 여행하며 기행일기나 적고 싶다고, 그런 생각을 수없이 간절히, 때로는 이를 갈며 정말로 많이 했었다. 그런 행복이 지척에 있는 줄은 몰랐다. 아무 때라도 이렇게 산골 버스에 앉아, 단기 여행일지라도 낯모를 사람들의 틈에서 제멋대로 생각을 하거나 졸면서, 공기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게 떠돌아 다닐 수가 있는 것을…

행복은 지척에 있었다. 자연은 내 속에 있었다. 마음을 열기만 하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자연이… 숨을 죽이고 어둠 속을 바라보며 자연의 음악을, 약초의 숨결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