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색과 빨강색이 만나면 보라색이 될까?

紫草의 보라색은 그런 만남이다.

紫草를 캐보면 紫草뿌리의 외피는 검정색을 주로 띠고 조금만 외피를 긁으면 빨강색의 내피가 나타난다. 년수가 낮을수록 빨강색이 선명하고 년수가 오래되면 검정색이 강해진다.
건조가 되면서 점점 자주빛으로 변해진다. 마치 붉은 선혈이 점점 말라 가면서 흑자색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약초를 대하면서 약초가 외면으로 나타내는 색깔과 약초의 약성과는 너무나 많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色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리와 질서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 나름의 의미가 분명히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芍藥의 라이프사이클에 나타나는 붉은 색, 丹蔘의 입술연지 같은 붉은 색, 蘇木의 붉은 나무결, 핏빛 심장을 뭉쳐놓은 것 같은 기린갈의 수지인 血竭, 牧丹의 검자줏빛 외피, 鷄血藤의 색깔 등등 모두 혈분에 들어가 보혈, 생혈하거나 활혈화어하는 즉 血과 관련된 주치를 가지고 있다.
물론 많은 예외도 있을 수 있고 색깔만 가지고 약성을 평할 수는 없겠지만 약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단초가 색깔을 관찰하는 데서도 발견될 수 있으리라.

한의과대학을 들어온 누구에나 뭔가 신비한 약초에 대한 관심들은 있기 마련이다. 동양의 학문을 공부하다보면 뭔가 불로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같은 것 말이다.
나에게도 역시 그러한 것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지치로 불리는 紫草였다.
팔십 먹은 노인이 오래 묵은 야생자초를 달여먹고는 삼일 동안 취해 잠만 자다가 깨어나서는 홍등가의 아가씨 화대가 얼마인지 물었다는 이야기라든가, 불치의 병을 앓던 이가 야생자초만 구해 달여 먹고는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 하물며 신경통엔 지치술이 최고라던가 하는 등등 민간에서 자초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자초는 겨울 눈 덮인 산에서 주로 캐는데 오래 묵은 자초가 있는 곳은 주위의 눈이 붉그스레하게 녹아 있어 캐는 이는 그것을 보고 찾아낸다는 등 자초는 신비스러울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약초였다.

그러나 야생 자초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끔 장터에서 미끈하게 잘 빠진 재배된 자초가 보이긴 했지만……
내가 약초꾼 강씨를 처음 만난 것은 경북 영천의 장날에서다.
영천의 장은 아직도 큰장의 면목을 유지하고 있어 장날이면 전국각지의 상인들이 농산물과 약재를 거래하려고 모여든다.
소란한 장날 부산한 시장의 한 귀퉁이에서 이상하게 생긴 통통한 약초 몇 무더기를 놓고 추운 듯 쪼그리고 앉아 있는 50대 중반의 남자가 보였다.
어린아이 팔뚝 굵기만한 흑자색의 약초뿌리가 궁금하여 이름을 물어보니 지치라고 한다. 가격을 물어 보니 한 뿌리에 30만원이란다.
드디어 야생자초를 발견했다는데 한번 놀라고 가격이 이렇게 높은데 다시 한 번 놀랐다.

야생의 자초는 굵기와 년 수에 따라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정확하게 년 수를 알아낼 수 없지만 보통 생체일 경우 10년 이상이면 엄지손가락 보다 조금 더 굵은 정도의 굵기가 되고 20년, 30년으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굵어져 어린아이 팔뚝만큼 굵어진다. 오래되면 속이 썩어 물이 차는 경우가 많아 캐내면 물이 말라 버려 중량이 감소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임자를 물색한 다음 캐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마치 산삼 캐는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씨가 떨어져 자초의 형태를 이루면 3년생이 되니 보통 흔하게 캐는 것은 4∼5년생이 제일 많다고 한다. 강씨를 졸라 함께 자초를 캐러가기로 약속을 받아내곤 헤어졌는데, 아무래도 30만원짜리 야생자초가 탐이나 여기저기 돈을 구하여 다시 찾아가니 이미 없었다.
주위에 물어보니 내가 가자마자 임자가 나타나 팔고 갔다는 것이다.
아, 물건의 임자는 따로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다음 만날 것이 궁금해졌다.

아침 8시에 의성의 아파트 앞에서 강씨를 만났다.
저번처럼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는 이 사람들이 왜 자기와 더불어 산으로 가려하는지 궁금한지 자꾸만 쳐다본다.
약초를 캐서 생계를 이어온 지 벌써 30년, 그 동안 의성에서 자기와 더불어 약초를 캐오던 2∼30명에 달했던 약초꾼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어 사망하거나 약초캐기를 포기해버려 남아있는 사람은 자기 외에 한 사람 정도가 더 있다고 한다.
약초를 캐서 자식 공부까지 시켰다는 강씨는 우리 시대의 몇 안 되는 전업 약초꾼이었다.

의성에서 927번 지방도로를 따라 신평으로 가는 동안 경북의 내륙에 이렇게 깊은 골들이 많이 있나 새삼 느껴본다. 예전엔 이렇게 넓고 깊은 산과 골들에서 수많은 약초가 캐어졌을 것이고 지금은 여기가 주인(약초꾼)이 없는 무주공산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아쉬운 감회가 든다.
강씨의 말이 이제는 약초꾼이 없어 혼자는 먹고 살만 하단다.

이윽고 산밑에 도달한 강씨는 휘적 휘적 산을 오른다. 깡마르고 구부정해서 약해보이는 강씨이지만 산에서는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여유롭게 산을 오른다.
뒤쳐지는 우리를 생각한 듯. 길이 없는 곳을 약을 캐는 곡괭이로 길을 잡아주고는 조심하여 따라 오란다. 뒤따르는 우리는 벌써 숨이 턱에 받혀 오른다.

아직 삼월 초순이라 쌀쌀한 날씨다. 곳곳에 녹지 않은 눈들이 쌓여 있다.
산의 8부 능선쯤에서 강씨의 시선이 바빠진다. 소나무군락이 참나무군락에 밀려 올라간 경계선에서 소나무가 있는 지역쪽으로 지치가 잘 자란다며 주변을 둘러본다.

드디어 강씨의 신호가 왔다. 자초였다. 줄기가 말라 있어 도감속의 자초와는 달라 보였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니 적갈색의 솜털이 난 줄기이며, 주위에 떨어진 말라버린 잎에 난 잎맥이 바로 자초였다. 도감에서 보지 못한 하얀 씨앗들이 새싹의 눈처럼 졸망 졸망 달렸다.

8부 능선에서 정상까지 드문 드문 자초를 발견하며 올라갔다.
자초는 한 곳에서 발견되면 주변에 1∼2미터의 간격으로 2∼3뿌리가 모여 있다.
자연적으로 씨앗이 떨어져 자란 형태라고나 할까?
한뿌리에 줄기가 여러 개가 올라온 것은 뿌리가 굵고 해서 년 수가 좀 오래된 자초임을 알겠다.
눈속에 둥글레가 까만 열매를 달고 있고, 삽주도 바삭 마른 채 눈밭에 떨고 있다. 반나절 동안 세 사람이 열댓뿌리 정도를 캔 것 같은데, 내가 캔 것은 고작 한 뿌리다.

강씨의 말을 빌리면 자초를 하루에 바짝 캐면 생체 2∼3근 정도를 캐는 데 작은 것은 돈이 안되고 10년 이상된 것을 캐야 돈이 된다고 한다.
10년 이상된 것은 주로 한약방이나 개소주집으로 팔려나간다고 하는 데 한의원이 주 소비처가 아니라는 사실이 뜻밖이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과연 귀한 야생약초의 주인은 누구여야 하는지 되씹어본다.

0 답글

댓글을 남겨주세요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