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뿌리를 씹어먹던 추억이 있습니까?

어릴 적 주전부리거리가 귀했던 그 시절 조막손에 작은 괭이 하나들고 뒷산에 올라가 동무들과 칡뿌리를 캐어 하루종일 질겅거리고 씹다보면 이뿌리가 얼얼해지고 입 주변엔 칡 물이 들어 시커매진다.
칡뿌리를 캐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요행히 비탈진 곳에 자리잡은 칡을 캐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잡목 틈 사이에 뿌리를 박고 돌 틈 사이로 파고 들어간 칡을 캐다보면 어느새 반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사실 칡은 초본으로 분류되는 것 보다 오히려 목본으로 분류된다.
보통 내륙지방에선 4월이 되면 겨우내 말라있던 칡등에서 칡순이 올라온다. 뱀의 혀끝 같은 칡순이 바람에 날름거리며 치켜들고 있다. 그렇게 올라오는 칡순을 꺾으면 맑은 잿빛 물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칡순은 목을 늘리고 키를 키워 어느새 소나무 등을 타고 넘는다.
매미소리가 울릴 즈음이면 온 산천은 칡등으로 덮인다. 무성한 칡등 위로 벼슬 같은 칡꽃이 핀다. 전신주를 타고 올라간 칡등으로 칡꽃이 줄레줄레 피어 있다. 그것도 잠깐 가끔 쏟아지는 빗줄기에 떨구어진 칡꽃잎이 보일 즈음 하나 둘 칡꽃이 피었던 자리에 꽁깍지가 달린다. 어느새 칡의 순은 말라 부러져 버리고 가끔씩 불어오는 찬바람에 칡의 잎은 노란옷으로 갈아입고 줄기도 말라간다.
줄기가 모두 말라버린 뒤 우린 칡의 뿌리를 캐러 산으로 들어간다.

칡의 모습에서 四季를…

칡은 너무나 분명하게 봄, 여름, 가을, 겨울 기운의 움직임을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칡의 모습을 바라보며 칡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만약 여름에 우리가 칡뿌리를 캐어 먹어 본다면 전분이 거의 없는 거칠기만한 칡뿌리를 씹게된다. 반면에 칡등이 말라버리고 난 후 가을이나 겨울의 칡뿌리에서는 그야말로 ‘쌀칡’ 이라 불리는 전분이 많은 칡뿌리를 먹을 수 있다.

봄철 칡순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또아리를 튼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을 연상하는 이유는 어딘가로 뻗기 위해 팽팽해진 그 힘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방에서 칡순을 갈용이라하여 녹용과 같이 대우함은 뚫고 뻗어나가는 힘이 녹용 못지 않기 때문이리라. 혹시 사랑을 할 때 팽팽히 뻗치는 힘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징그러운 뱀만 고아 먹지 말고 봄철 칡순을 뜯어다 밤 (건율)과 함께 고아먹어 볼 일이다.

여름철 칡꽃이 활짝 피기 전에, 다시 말하면 칡꽃을 뜯어도 꽃이 헝클어지지 않을 때 칡꽃을 따야한다. 비록 뙤약볕이 내리쬐어도 칡꽃의 향내가 너무 달콤해 꽃을 따는 일이 고되지 않다. 다 딴 꽃을 응달에 널어두면 향기가 남아 있으면서 서서히 마른다. 때론 칡꽃을 좋아하는 벌레가 숨어 있지만 주변에 설탕물 조금 뿌려두면 벌레가 빠져 나온다.
칡꽃 즉 갈화는 주독을 풀어주는 묘약이다. 칡뿌리도 주독을 풀지만 갈화를 따라오진 못한다.

칡은 무엇으로 사는가?

칡의 약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칡의 마음을 엿보기로 하자.
사람들은 돈을 번다. 먹고살기 위해서, 여자를 사랑하고 또 그 여자와 더불어 대를 이을 자식을 얻기 위해, 그리고 부모와 처자를 봉양하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번다.
왜 돈을 버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따귀를 갈길 테다.
식물은 물과 햇볕을 차지하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 그 결실이 뿌리에선 정유의 형태, 전분의 형태, 그리고 수분으로 갈무리하는 것 같다.
거기에 무슨 성분이 있는가는 그쪽의 전문가에게 맡겨 두고 우리는 일단 보이는 것만 가지고 이야기 해보자.

내가 본 칡은 물과 햇볕을 차지하는데 아주 유리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적응하는 능력이 있고, 덩굴성으로 다른 나무의 꼭대기로 기어올라 햇볕을 받는 것도 유리하며 더구나 큰 잎사귀는 탄소동화작용을 하기에 너무 훌륭하다. 그래서 이 시대에 칡이 번성하는가 보다.
칡은 주변의 수분을 흡수하고 광합성을 통하여 생산한 영양소를 전분의 형태로 뿌리 깊숙이 저장을 하고는 그 동안 늘려 놓았던 자신의 신체 일부(잎과 줄기)도 차단시키고 겨울을 땅 속에서 지낸다. 칡은 다른 식물보다 뿌리가 크고 굵은 편이다. 다시 말하면 저장창고가 큰 편이다. 모든 조건이 칡의 생존에 유리해 보인다.

여름철 무성할 자신을 꿈꾸며…

겨울을 땅속에서 보내는 칡은 여름철 잎이 극도로 무성하게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며 겨울을 보내는 것이다.
칡이 꿈꾸고 있는 모습이 바로 칡의 약성이 아닌가? 호박이나 수박은 수분을 과육에다 저장을 하고, 댕댕이덩굴이나 으름덩굴은 줄기에다 저장을 하고, 인동의 덩굴은 잎과 줄기에 저장하여 겨울에도 잎이 시들지 않고, 하수오덩굴이나 칡덩굴은 뿌리에다 전분의 형태로 저장을 한다.
이듬해 순과 잎이 나오는 부위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뿌리에 전분의 형태로 감춰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水氣를 생각하며 옛 의원은 갈근을 양명의 불을 끄는 소방수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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