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5월 27일 우리는 9박10일의 일정으로 중국의 신강성으로 갔다.


사막에 사는 육종용과 쇄양이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육종용은 사막의 인삼이란 대우를 받고, 쇄양은 興陽이란 별칭을 받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약효를 갖고 있지만 그 산지가 워낙 멀리 있다보니 한의사의 주목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는 약재이다.
하지만 난 그 친구들의 뛰어난 약성에 마음이 끌려서라기보다 그들이 그렇게 까마득한 거리에 살고 있다는 그 자체가 좋았다.
비행기로 베이징까지 날아가 다시 가장 빠르다는 열차 특쾌를 타고 3박4일을 간 다음 거기서 다시 차를 대절해 3∼400km를 달려가야 만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나에게 분명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어느 하늘밑 잡초 무성한 언덕이어도 좋아,
어느 하늘밑 억세게 황량한 벌판이어도 좋아,
공간 가득히 허무가 숨쉬고, 그리고 하늘 밑 어디에라도,
내 시선이 뻗어 저 무한의 거리가 까무러치도록 멀어서 혼자서만 외로워하는 그런 곳이면 좋아…”

80년대 초 대학가요제에서 잠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사라져간 노래의 가사처럼 난 가끔 아주 까무러치도록 먼 곳으로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대고 시선 줄 곳은 아무 데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 한번 서 있어보고도 싶었다. 가슴을 휘돌아 몰아쳐 오는 미친 듯한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 세상의 끝까지 질주해 보고 싶은 유혹이 나를 전율하게 한다.

돌려짓기로 재배해야

출렁이는 침대칸에서 막 눈을 뜨니 차창으로 거대한 흙더미에 굴을 파고
문만 달랑 달아놓은 흙집들이 보였다 사라졌다한다.
여기가 어디인가. 지금이 몇 시인가.
아침 8시경이다. 주위에 물어보니 이제 막 낙양에 도착한단다. 옛 고도를 통과하며 차츰 정신이 든다.
북경발 우루무치행 밤열차에 몸을 실은 우리들은 황량한 사막으로 간다는 흥분에 휩싸여 밤새 주절거렸다.
오랫동안 약초재배를 해온 조선족 박영감은 통역겸으로 우리와 합세하였는데, 약초를 재배하는 데 가장 좋은 씨앗은 야생에서 씨앗을 받아 첫 세대만 재배하고 다음 세대는 재배하지 말라고 한다.
첫 세대 말고 다음 세대는 반드시 약해진다고. 약초는 반드시 돌려짓기로 재배해야 한다고도 한다.
안국시장의 정경리도 한마디한다.
북경의 제약청에서 1년에 육종용 3∼400t을 갖다 쓰는데 신강의 약재 라오반이 때마다 많은 사람을 데리고 사막으로 들어가 캐 나온다고 한다. 중량을 높이려고 소금을 먹여 재운다고 한다.
곤륜산 남부에서 나는 육종용은 목질이 많고 곤륜산의 북부는 육질이 많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몰라도 뭐가 중요한가. 좁고 흔들리는 침대칸에서 남자들 여럿이 모여 술이야기, 군대이야기 여자이야기 옛날이야기 등등 되는 대로 지껄여 가며 밤을 지내왔다.

황토의 바다를 통과하며

오후 2시경 西安을 지나고 5시가 되자 황하의 지천을 통과하는 듯 황토물이 흐르는 강들이 보인다.
어떻게 강물이 이렇게 시뻘건가.
예전 히말라야 산록을 타고 내려오는 얼음 녹은 인더스강물이 연초록임을 보고 의아해 했지만, 황하의 시뻘건 강물 역시 우리네 상식을 깨트려 버린다. 지금 통과하는 이곳은 거대한 황토의 바다다.
가끔 담틀집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황토와 더불어 살아가는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이 보인다.
저녁이 되면서 감숙성으로 들어가는 듯 지세가 험해진다. 깍아지른 산들을 뚫고 철길은 달리고 해발 3000m가 넘는다는 높은 산엔 계단식의 밭들이 주름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강우량이 적고 건조하여 중국에서도 가장 빈곤하다는 성이 감숙성이다.

 주름모양으로 그려진 계단식 밭

당귀니 대황이니 하는 약재의 주산지가 되는 이유가 농사보단 고산의 약초가 오히려 재배의 적지가 됨을 높은 산에 그려진 계단식 산들을 보니 알겠다.
정경리가 文峰中藥材市長에 가면 감숙성산 약재를 주로 판매한다고 하면서 한번 가보자고 한다.
창문에 머리를 박고 차창 밖을 내다보니 어둠이 짙게 깔린 바깥은 희뿌연 하늘과 흙산이 대비를 이루며 끝없이 펼쳐간다.
아, 감숙의 산야를 이렇게 지나는구나.
다음날 아침 침대칸의 덜컹거림으로 자연스럽게 눈을 뜨니 아직도 황토언덕과 흙산들이다. 흙산과 단조로운 구릉 그리고 아주 가끔 보이는 집들은 서북풍의 몰아치는 거센 바람을 피하기 위한 듯 납작한 성곽형태로 지어져 두터운 흙담으로 막아 놓았다. 한국의 흙집에서 느끼는 포근함과는 전혀 다른 황량하고 적막한 느낌뿐이다. 눈만 뜨면 보이는 적막한 강산을 계속하여 대한다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어떻게 변할까.
중국의 서북지방을 철마로 가로지르며 素問의 異法方宜論을 떠올린다.
단조로운 하늘과 땅들이 하루 이틀 계속 반복되는 동안 난 서서히 기가 질리고 있었다. 광활한 땅들이 오히려 답답한 감옥처럼 옥죄여 오고 황갈색의 단조로운 색깔에 둘러싸인 이 공간이 끝이 없는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듯 어느새 내 가슴에 寂寞無朕의 암담함으로 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막의 내음이 실려오고

43시간을 달려 드디어 중국과 서역의 경계인 가곡관에 도착했다.
서역으로 가는 마지막 이별의 장소인 가곡관 저 너머로 사막의 내음이 실려오는 듯 하다.
열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어대는 키다리 아가씨의 해맑은 미소가 별나게 아름다워 보인다.
마치 땅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땅이 하늘과 닿아 지평선을 이루고 있는 아득한 먼 곳에 시선을 던지고는 석양이 내리고 어둠이 깃들 때까지 내내 창 밖을 바라보았다. 촛점이 맞춰지지 않아 아련할 수밖에 없는 대지를 바라보려니 그냥 눈물이 나온다.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움직임이다. 무엇이 나를 뭉클하게 하는가. 태고의 적막이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나의 어느 부분을 건드리는가?

0 답글

댓글을 남겨주세요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