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서는 초입서부터 계곡을 죄 뒤덮은 조팝나무 흰 쌀알꽃의 알싸한 향에 온 눈과 마음을 빼앗겨 버린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차 안에 내몸을 맡기다 보니 차는 어느새 고개마루에 멈추어 섭니다. 고개마루 아래로는 잘 개간된 땅이 봄 햇살에 맨살을 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개간중인 황기 밭

산이 깊어 일교차가 싶하고 볕이 잘들며 물빠짐이 좋은 약간 비탈진 곳에서 잘 자라는 것이 황기의 특성인지라, 거창군 일대의 여러곳을 물색하던중, 은사시 나무가 빼곡하던 이곳을 개간하여 밭으로 일구게 되었습니다.

포크레인으로 땅을 뒤집고, 다시 평평히 다져두어 황기씨가 잘 발아되기 위해 적당한 비만 한번 와주기를 내내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세번째 강원도 행

아직도 여전히 강.원.도. 하면 난 왜이렇게 가슴이 설레고 아련하기만 한 걸까?

몇 년전, 처음 강원도 땅을 들어섰을 때의 그 낯설음, 새로움,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들이 아직도.. 여전히.. 그대로 살아있는 것만 같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몇 차례나 연기되었던 일정인지라 미리부터 비가 아무리 와도 강행한다는 언지가 있은 후 였다.

우산이며, 우비며, 여벌옷들을 어제 싸둔 짐속에 다시 챙겨넣는다.

안동으로 가는 국도변, 삼백초 재배지를 보고 차를 세운다.

꽃이 희고, 잎이 희고, 뿌리가 희다해서 삼백초라 불린다는, 여지껏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삼백초를 오늘에야 직접 보게 되었다.

삼백초

삼백초 뿌리
삼백초 잎

사실 그동안 어성초와 삼백초가 한테 뭉뚱거려진 채 기억이 되고 있었다.

삼백초는 키가 크고, 잎도 넓고 크다. 꼬리풀 모양의 흰색 꽃 아래 녹색의 잎 두장이 꽃처럼 흰색으로 변해 있다.

뿌리를 캐어 확인해 봐도 역시, 삼백초라는 이름이 이래서 생긴거군,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안동은 토질이 마사토라 산약과 우슬, 도라지, 지황 등이 잘 된다 한다.

역시나 가는 곳곳에 산약 재배지가 눈에 띈다.

산약

한 뿌리 캐어보니, 이제 막 손톱만한 알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비가 약간 내리고 있는데다 마사토라 그런지, 삽도 없이 손으로 쓰윽 잡아 뽑아도 뿌리가 잘리지 않은 채 잘 뽑혀 나온다.

우슬

쇠무릎이라 불리는 우슬의 뿌리는 수장근(手掌根)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살짝 깨물어 먹어보니, 쌉싸름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영광의 굴비 하면 이곳 안동에서도 빠지지 않고 내놓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짭쪼롬한 간고등어. 다른 생선들 보다도 빨리 상한다는 고등어는 냉동시설 없던 그 옛날에는 해안지역에서 직접 공수해온 고등어에 굵은 소금을 팍팍 뿌려 간을 충분히 배이게 해야 맛은 차치하고라도, 우선 상하지 않게 운송할 수 있었겠지. 노릇노릇 짭쪼름한 간고등어 한 토막 씩 나오는 정식이 꿀맛이다.

경북 지역에서 제일 춥다는 춘양면을 지난다. 안동과 이웃하고 있지만 한겨울의 날씨는 10도 이상 차이가 나고 봄이 제일 늦게 오는 곳이라는데 그래서 이름도 긴 겨울 내내 봄을 기다려 춘양이던가?

이제 강원도 땅으로 들어선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다. 기분 탓인가?

경북지역의 뙈기밭에 익숙해져 있던 나의 시야는 옆으로 옆으로 또 위로 확장되어야만 했다. 산비탈에 벌겋게 드러난 저것들이 죄다 밭이란 말인가?

강원도의 밭은 기본이 몇 만평이라니, 밭이라면 집 텃밭만 생각하던 나한테는 큰 충격이다. 산비탈에다 저 넓은 밭을 개간하는 일도, 매일 매일 등산하듯이 올라가 저 밭에다 씨앗을 뿌리고 풀을 뽑는 일도 참 힘든 노동이겠구나…

눈에 보이는 약초는 죄다 이 지역에서 많이 나는 당귀, 강활 등이다. 내눈에는 그 많은 약초밭들이 놀라울 따름인데 몇년 째 게쏙 강원도 재배지를 둘러보시는 분은 오히려 “그 많던 약초밭이 다 없어졌다” 며 놀라워 하신다.

약초밭들이 지금은 죄다 배추으로 둔갑해 버렸다는 것이다. 약재 시세에 도무지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 농민들의 선택이었곘지..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던, 강원도에서 황기와 황금 재배를 하고 계신 정선의 이ㅇㅇ님을 방문 했다.

근처 동강옆의 매운탕 집으로 향한다.

작년, 어마어마했단 수혜의 흔적은 아직 그 상처를 아물지 못한 채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벌써 1년이 지나가지만, 워낙에 전국적으로 피해가 컸던지라 이런 구석구석 까지는 복구 작업의 손길이 늦춰질 수 밖에 없나 보다.

여관방에서 혼자 밤을 보내고 새벽 일찍 일어나 동강을 거닐어 보리라 마음먹고 어제 저녁 잠자리에 든 게 무색하게 요란한 기계 소리에 눈을 뜨니 날은 이미 훤히 밝고, 이른 아침부터 굴삭기 작업이 한창이다.

찝차를 타고 황기밭으로 향한다.

도로를 한참 달리다가 이제는 도로를 벗어나 산으로, 산으로, 그리고 산으로..

찝차가 아니면 도저히 갈 엄두도 내지 못할 깊은 산속이다. 풀이 난 모양새를 보고서야 그래도 이 길로 가끔씩은 차가 지나다니기도 하겠구나, 짐작할 뿐이다.

수풀 속을 헤치고 차는 덜컹거리며 달리는데 차 앞을 뒤뚱뒤뚱 가로질러 건너는 저 녀석들은?

산꿩 새끼 두마리가 아직 날지도 못한 채, 고요한 산속에 요란하기도 했을 자동차 소리에 놀라서 도망가는 중이다. 숲속 긴 터널을 헤치고 도착하니 탄성이 절로 터진다.

황기 밭

이곳이 어딘가?

하늘과 맛닿은 비탈진 들판에 황기가 초원처럼 펼쳐져 있다. 오늘 따라 하늘은 또 왜 이렇게 푸르기만 한건 지..

재배밭이라곤 하나 그냥 씨를 확 뿌려놓아 3년 동안 마음 껏 자란 모습들을 본다면 야생 군락지라 한들 누가 감히 시비를 걸까?

그래도 김매는 작업은 계속 해오셨다 하시는데 그러고 보니, 아니었다면 이 좋은 환경에서 다른 풀들이 번식하는걸 도무지 감당하지 못했을 것 같다.

준비한 대삽으로 뿌리를 파보니, 3년동안 잘 자란 황기가 쭉쭉 뻗어있다.

여름 장마가 지나면서 이 녀석들 또 하루하루 쑥쑥 자라겠지.

재배밭을 많이 다녀보긴 했지만 마치, 비밀스럽게 숨겨둔 보물을 발견한 듯 이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황기밭에 한번 놀란 우리 일행들..

이제 황금밭으로 향한다.

황금밭이 있는 곳은 더 가파른 곳이고, 비 온 뒤라 땅도 질고 해서 차가 올라가질 못한다. 몇 번 시도를 해보다가 하는 수 없이 차는 세워두고 걷기 시작한다.

여기는 길가에 하고초가 천지다.

같이가는 사장님… “하 여기 하루종일 뽑으면 최상품의 하고초가 몇 근을 나오겠는데” 하며 아쉬워 하신다. “산시호다”하며 길가 수풀속에서 발견한 산시호 한뿌리 캐며 좋아라 했더니 아니 웬걸.. 조금 더 가니 산시호 군락지가..?

얼치기

이ㅇㅇ 님의 말씀으로는 이게 얼치기라는 것으로 산시호의 대용으로 산에다 이렇게 재배해서 키우는 것이라 한다.

황금 꽃

4000여평 황금밭에는 이제 막 보라색의 앙증맞은 황금꽃 들이 피기 시작하고 있다. 한뿌리 캐어보니 황금색의 뿌리가 튼실하게도 자라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왜 황금색 똥을 누는 건강한 아기들이 생각나는 거지?

산을 내려와 황금과 황기를 올 가을 작업하기로 계약재배를 한다.

3년근 황기는 재고가 많아 확실한 약속을 드릴 수 없다는 말에 어쩐지 조금 실망하시는 듯 하다.

농민에게 가장 힘든 과정은 농사를 짓는 순간도, 힘겨운 농사 빚을 져야하는 순간도 아니라 정성 껏 지은 농산물의 판로가 막혀 있을 때이지 않을까?

이렇게 좋은 황기밭을 보고도 구입하겠다는 확실한 약속을 드릴 수 없는 우리도 그동안 힘들여 지은 농사 우리한테 기분좋게 보여주시던 이ㅇㅇ 님도 안타깝고 먹먹한 순간이지 않을 수 없다.

1박 2일 동안 장정들 틈에 끼어온 여자라고, 그렇게 하나라도 더 신경 써 주시고 배려해주신 마음쓰심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남은 인생 정직하게 좀더 베풀면서 살고 싶으시다는 꼭 그런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키우신 황기들을 우리가 팔아드릴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며 돌아오는 길.. 마음이 무거워 진다.

이 글은 옴니허브닷컴에 2002년 7월 3일에 등록된 글을 각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