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 청송으로 넘어가는 길에 상옥이란 곳이 있다.
굽이굽이 가파른 재를 넘어야 가는 험한 고개이기에 옛날부터 호랑이나   큰 짐승들이 자주 나타나곤 했다.
비포장 길을 지프차로 허이허이 올라가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거기서부터   쑥밭골까진 자주 자욱한 안개가 끼어 있곤 한다. 일기도 갑자기 변하여 싸늘한 바람이 불고 안개가 한참을 가도 끝나지 않아 마치 기문둔갑의 진속에 갇힌 기분이 든다.

지금은 개발의 여파로 경작지가 많이 줄어졌지만 한때는 이 곳이 경북 천궁의 주산지였다.


천궁은 습하지만 질지 않은 땅에 잘 자란다.
건조해도 작황이 나쁘고 장마가 지면 뿌리가 썩어버린다. 그래서 농민들에게 천궁은 투기 작물이다.

천궁의 향과 맛은 너무나 맵고 강렬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한약 냄새로 대표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바로 천궁의 향이 아닐까. 집 주변에 심어 놓으면 뱀조차 피한다 하여 蛇避草라 불리기도 하였고, 천궁의 싹은
그 독특한 향이 삿된 기운을 쫓는다고 하여 벽사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였다. 천궁의 정유 성분에 배어 있는
향과 맛을 완화하기 위해 절편하여 물에 담구어 거유시킨다.

울결이란 것은 기혈이 마치 기문둔갑의 진속에 갇혀 진퇴양난의 상태에 빠진 것이라 볼 수 있다.
맑았다 흐렸다 변덕이 심한 산골의 날씨처럼 가슴이 답답하여 종잡을 수 없는 우울증이나, 마치 안개에 가린 듯 흐릿하여 두뇌가 맑지 않아 생기는 어지럼증이나, 주인이 잠시 허약함을 틈타 침입한 풍사에 의한 두통증이나, 습냉에 둘러 싸여 옴짝달싹 못하는 하복의 울혈증에 천궁은 흉협을 관통하여 위로는 뇌까지 다다르고 아래론 하복까지 미치는 울결을 풀어내는 모습이 마치 단 한 필의 말이 선두로 五里霧中의 적진을 뚫어내는 형국과 비교하면 무리인가.

川芎의 원래 이름은 芎이다.

時珍謂, 出關中者, 呼謂京芎, 亦曰西芎, 出蜀中者, 爲川芎, 出天台者, 爲台芎, 出江南者爲撫芎, 皆因地而名也 이로 미루어 보면 천궁은 중국의 여러 지방에서 나지만 四川省에서 나는 천궁을 정품으로 보고 품질도 제일 좋다고 인정하여 주었는가 보다.

한국엔 토천궁과 일천궁의 구별이 있다. 형태도 다르고 가격도 다르니 분명히 효능도 다를 것이다.

중국의 천궁과 한국의 토천궁은 식물 형태적으로 아주 유사하다. 10년전만 해도 울릉도 성인봉의 나리분지는 일천궁과 전호의 주산지였다. 그때만 해도 내륙엔 일천궁이 퍼지기 전이었다. 울릉도는 바다를 끼고 있어 다습하고 화산지역이라 배수는 잘되고 일교차가 심하여 일천궁의 재배적지였다.
10년 전 친구와 함께 아무 생각 없이 성인봉을 지나 나리분지를 통과하여 내려온 기억이 있는 데 아마 그때 맡았던 약초의 향기가 천궁의 향기가 아니었는가 한다.
지금은 천궁이 지력을 많이 빨아먹는, 연작이 불가능한 작목이라 천궁을 계속 재배할 땅이 없어 울릉도 일천궁의 명맥은 끊어져 버렸다.

천궁이 고지대의 일교차가 심한 냉습한 지역에 자라는 약초이지만 일천궁은 토천궁에 비해 재배 범위가 훨씬 넓다. 토천궁이 경북 북부, 강원도 일대에 국한되어 재배된다면 일천궁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재배될 정도로 재배범위가 넓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훨씬 많은 질병이 들게 되고 농약의 피해도 많다고 하겠다.
그러나 농민들은 토천궁보다는 일천궁을 심기를 선호한다. 일천궁은 종근이 토천궁보다 2∼3배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확량이 많기 때문이다. 생천궁을 캐보면 물탱이라 할 정도로 질이 무른데 이것이 건조되면서 딱딱해지는 것이다.

본초서에 크기가 작고 질이 단단하면서 향이 좋은 것을 雀腦芎이라 하여 상품이라 한 것을 보면 토천궁이 雀腦芎에 가깝다 하겠다.
그러나 토천궁의 재배면적은 점차 줄어든다. 경북의 상옥이나 기계 기북면 등의 재배지를 가보면 연작이 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점차 면적이 줄고 농민들도 알뜰히 종자를 보존해야 겠다는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저 애물단지처럼 작년에 따놓은 노두가 있으니 심는 그런 형편이고 그마저 전국으로 본다면 그저 일부만 남아 있을 따름이다.

연배가 있으신 한의사분들은 일천궁은 쓰지 않고 토천궁만 고집하니 상대적으로 부족한 토천궁의 값은 오르기 마련이다.
참고로 ‘본초도감’에는 천궁의 학명은 Lingusticum chuangxiong Hort.이고
일천궁의 학명은 Cnidium officinale Makino.이다.

중국에선 연변지역에서 재배되는 일천궁을 동천궁이라 하고 효능은 천궁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한의사 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