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立夏)도 넘겨 초여름 기운이 완연한 지난 주말, 신농본초경을 함께 강독하는 한의사 동료들과 오대산을 올랐습니다.
토요일 저녁 무렵 민박집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앞산 기슭에 올랐더니 산 기운이 서늘하여 오대산에는 아직 새봄이 떠나지 않은 듯 합니다.
약초가 무성해지고 있는 남녘의 나트막한 산들과 달리, 고도가 높은 오대산은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아 눈에 띄는 약초들은 어린 새잎들만 보입니다. 밭에 심겨진 참당귀도 겨우 4∼5센티 될까말까하는 어린잎입니다.

다음날 새벽, 민박집 뒤, 낮은 산부터 올라가 보았습니다. 서남향의 경사진 등성이로 오르니 잔대(沙蔘)가 여기 저기 눈에 뜁니다. 작은 산꼭대기를 넘어 음습한 북향으로 내려가자 푸른 이끼 덮인 바위틈 사이로 공룡시대와 어울릴 것 같은 관중(貫衆)이 군락을 이루며 불쑥 솟아 나와있고, 천남성, 세신 등이 보입니다.

내려와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 차를 몰아 산 속 깊이 들어가 서향 등성이로 두 번째 파산(爬山 ; 약초를 캘 때는 경사가 심한 산을 기어서 오름)…. 나무가 우거지면 약초가 녹는다고 하는데 거칠게 껍질 벗겨진 미후도 덩굴 외에는 풀도 약초도 보이지 않습니다. 죄없는 미후도 덩굴만 호미로 쪼아 물을 받아먹고 다시 하산. 동향 등성이로 세 번째 파산. 역시 야생 참당귀 몇 포기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오대산보다 위도나 고도가 낮은 치악산으로 향하기로 하였습니다. 역시 예상은 맞아 치악산은 오대산에 비해 풀이나 약초나 훨씬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특히 백출은 원없이 실컷 보았고, 한술 더떠 “심봤다”까지 할 뻔했는데 아쉽게도 오가피나무 옆으로 삐져나온 오가피나무의 새순이었습니다. 오가피와 산삼은 똑같은 잎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에서 구분할 때, 두 놈의 차이점으로 하나는 木本이고 하나는 草本이라는 것뿐입니다. 더위지기와 쑥처럼 말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을 막론하고 산을 헤매며 약초를 찾다보면 시간가는 것을 잊습니다. 그러다가 약초를 발견하면 氣味를 느낄 수 있도록 맛을 봅니다. 자연 상태의 약초를 생것으로 캐서 처음으로 먹어보면 그 강렬한 맛에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깜짝 놀랍니다. 白朮을 손톱만큼 잘라 입안에 넣어 씹으면 맵고 화한 기운에 입안이 얼얼합니다. 연필심보다 가는 細辛의 잔뿌리 하나만이라도 잘근잘근 씹으면 혀가 마비되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비로소 한약이 이렇게 강한 약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방으로 흩어져 쉽게 느낄 수 있는 매운 맛의 약초 외에도, 우리가 임상에서 상용하는 약초들은 야생의 상태에서는 강한 약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傷寒으로 辨證할 수 있는 급성 패렴 등과 같은 발열성질환뿐만이 아니라, 많은 내과 질환에서 한약이 양약보다 빠른 효과를 보이는 이유입니다.

이와 같이 강렬한 힘을 가진 生 약초를 길들이는 것을 法製라고 합니다.

생약초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고 길들이는 것은 야생마를 조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야생마를 조련하면 더욱 훌륭한 명마로 바뀌듯 법제를 거친 약초는 더욱 효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사실 법제란 어려운 뜻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싱싱한 콩으로 메주를 쑤는 것도 법제고, 소고기를 배즙에 절여 놓는 것도 법제입니다. 물가자미를 쫀득하게 만들기 위해 햇살에 말리는 것(曝)도 소박한 의미의 법제에 속합니다.
한약이 약통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법제인 말리는 과정 정도는 거칩니다. 임상에서 상용하는 약재 중에 살아있는 야생마의 상태를 고집하는 것은 생지황, 생강정도 뿐입니다. 거의 모든 약재를 洗, 曝, 포, 炒, 炙, 단, 浸, 蒸 등의 法에 의해 순치(馴致)해서 쓰게 됩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생것은 ‘빠르고’ 법제한 것은 ‘느려’집니다.
생것은 급성질환에, 법제한 것은 만성질환에, 생것은 瀉法에, 법제를 거치면 補法에 가깝습니다. 약이 술을 먹으면 상승하고 소금을 먹으면 하강합니다. 지황은 아홉번 쪄진 후 六坎水의 形質로 변하고, 용골은  를 거친 후, 자신의 魄 속에 행여 남아있을 수 있는 한 가닥 魂마저 날려 버리며 진정한 攝魂之劑로 바뀝니다.

醫者는 意也라 東垣 李고 선생의 의도대로 인삼, 황기, 감초를 瀉熱之聖藥으로 쓴다면 밭에서 금방 캔 수삼, 생황기, 생감초를 구해서 쓰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고, 補脾를 목표로 한다면 홍삼과 밀자황기, 자감초 등으로 법제하여 써야 할 것입니다.

이윤(伊尹)은 역사에 실존하는 한의학의 鼻祖입니다. 王好古의 ‘탕액본초’ 서문에도 “世皆知素問爲醫之祖  而不知軒岐之書 實出於神農本草也”라 하여 한의학의 정통은 실질적으로 殷의 이윤에서 시작되어 漢의 장중경으로 넘어감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윤은 ‘本草’에 능하여 ‘湯液’을 지었고 중경은 ‘탕액’을 넓혀 ‘상한론’을 짓게됩니다. 또 이윤은 탕임금을 도와 은나라를 세운 뛰어난 재상으로도 유명한데,  庶草를 法製하고 調理하여 ‘탕액’을 짓듯,  庶民을 剛克하고 柔克하며 法天下하였던 것입니다.   (古代에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三德이 있는데, 正直과 剛克과 柔克, 세 가지이다. – 書經 洪範)

 一說에 의하면 이윤은 ‘요리하듯 천하를 다스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伊尹의 후예입니다. 산과 들을 헤매 이미 올바른 약재를 구했다면, 이제 그 놈을 잘 길들일 수 있는 법제에 관심을 쏟아야할 때입니다.   

… 한의사 전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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