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점심에 용정에 도착했다.

용드레 우물에서 멀지 않은 조선족 집에서 냉면을 맛있게 먹고 3시에 출발했다. 세 시간 반 가량 달려서야 안도현 이도백하에 도착했다. 해가 넘어가 서쪽 하늘이 어두운 보랏빛에 물들어있다.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저녁 7시이다. 식사는 7시 반에 했다.

이도백하는 백두산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연길에서 이틀 관광을 잡은 사람들은 거의 이도백하에서 머문다. 다음 목적지는 백산시 연강향 대릉장 인삼산, 이도백하에서 차로 2시간 반 가량 걸린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산삼을 ‘방추’라 하고 산삼을 캐러 가는 것을 ‘방산’(放山), 즉 산으로 간다고 한다.
청나라가 봉금 정책을 실시했을 때에 백성들이 산삼을 캐는 것을 엄금했기 때문에 ‘삼’이라는 말은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인삼을 캐는 사람들은 모두 나무막대기를 가지고 다녔으므로 삼을 캐는 것을 방추를 캔다고 했고, 산에 가서 캐야 하므로 ‘방산’이라고 했다.

한족 심마니들은 삼을 캐러 갈 때면 꼭 두 가지를 지킨다.

첫째는 절대로 타다 만 나무에 앉지 않고, 둘째는 뱀이나 두꺼비를 보아도 절대로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뱀을 보면 ‘돈다발’이라 하고 두꺼비는 ‘원보’(元寶)라고 한다. 그럴만한 이야기가 있었다.

옛날에 과부 슬하에서 자라는 한 남자애가 있었다. 방추를 캐서 자기를 위해 고생하는 엄마에게 밥을 배불리 먹게 하고 싶었다. 어리다고 동네사람들이 데리고 가주지 않아서 혼자 산을 헤매며 삼을 찾아 다녔다. 지칠대로 지쳐 타다만 나무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수염이 하얀 노인이 나타나서 인삼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노인은 “타다 만 나무는 하느님이 나에게 준 베개이니 다시는 앉지 말라”면서 나무를 들고 가버렸다. 그 바람에 나무에서 굴러 떨어진 아이는 잠에서 깼다. 노인이 가르쳐 준 곳을 보니 멀지 않은 곳에 인삼 두 그루가 있었다. 아이가 인삼을 캐 가지고 산을 내려오자 음식점에서 밥을 먹던 손님이 원보 두 개와 돈 한 다발로 그의 인삼을 사갔다. 아이가 원보와 돈다발을 멜광주리에 메고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강도가 나타나 광주리를 빼앗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광주리안에 원보나 돈다발은 없고 뱀 한 마리와 두꺼비 두 마리만이 있는 것이다. 화가 난 강도는 뱀과 두꺼비를 아이의 목에 단단히 묶어놓고 욕설을 퍼부으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이는 사색이 되어 울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가 웬일이냐고 물었을 때 아이는 자기 목을 가리키었는데, 목에는 원보 두 개와 돈다발이 걸려있었다. 그래서 심마니들은 뱀을 보아도 뱀이라 하지 않고, 두꺼비를 보아도 절대 두꺼비라고 하지 않는단다.

“내일은 목욕재계하고 ‘방산’을 가야지” 라고 생각했다. “뱀을 보아도 뱀이라 하지 않고, 두꺼비를 보아도 두꺼비라고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며 저녁을 먹었다.
식사 후 일행은 이도백하의 거리를 거닐었다. 한 상가에서는 예쁜 색동저고리로 만든 한복을 입은 일여덟 살짜리 여자애가 한국말로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라고 또랑또랑 말하고 있었다. 한복은 입었지만 말투가 이상해 잘 살펴보았더니 한족 애다.

이도백하에는 조선족보다 한족이 더 많다. 조선족마을은 이도백하에서 11k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이 마을은 백두산 아래 첫 동네라고 해서 하늘동네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미 120년의 이주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항일 전적지로도 유명하다.

상가주인은 애가 너무 한복을 입고 싶어해서 해 입혔다고 한다. 한면으로는 독특한 마케팅전략일 수도 있다. 해마다 백두산관광을 오는 국외 손님 중에는 한국인이 가장 많다. 조선말을 잘하는 딸을 자랑할 겸 한국손님을 끌 겸 딸애를 상가 선물 매대 앞에 세워둔 것이다. 손님들이 박수를 치며 칭찬했더니 아이도 으쓱한 표정이다.

이도백하는 작은 진이어서 잠깐 사이에 다 돌았다. 호텔로 돌아오는데 호텔문 앞 불이 밝은 곳에 흑진주 빛의 검은 것이 반짝거린다. 크기는 손바닥 절반만큼 하고 조개모양으로 둥글다. 앞으로 움직여 가고 있어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았다. 모두의 눈이 둥그레졌다. 하늘소였다. 그것도 뿔이 여느 하늘소보다는 한 개 더 많은 장수하늘소였다.
하늘소는 그 이상한 비밀무기를 내흔들며 땅에서 어슬렁 어슬렁 기어다녔다.

“이거 귀한 약재인데!”

중국말에 ‘삼구불리본항’(三句不離本行), 즉 ‘세 마디에 본업을 떠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약재전문가들이라 사물을 약재의 시각에서 보는 듯 했다. 우리 같으면 ‘이 무슨 이상한 벌레냐’라고 했을 텐데 그들은 우선 약재에 가치를 부여한다. 누군가 하늘소를 가루 내어 먹으면 결석을 치료한다고 했다.
모두들 이처럼 큰 하늘소는 처음 본다고 경탄했다. 그런데 너무 커서 누구 하나 그 괴짜를 집어들 념(생각)을 하지 못한다.

동우당 제약회사의 중국 대표 도재겸 이사가 유창한 중국말로 문 앞 걸상에 앉아있는 호텔 보안일꾼을 불렀다. 보안일꾼은 체격이 우람하고 씩씩한 20대의 젊은이였다. 어깨에 견장이 달린 제복차림을 했고 머리에는 둥그런 채양이 달린 높은 모자를 썼다. 손을 내저으며 자기의 업무범위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니쓰 보안마, 콰이라이바”(당신은 보안일꾼이니 당연히 처리해줘야죠!) 라고 농담하며 도이사는 보안일꾼을 장수하늘소에게로 끌었다. 보안일꾼은 또 한번 강경한 태도를 보이다가 곧 포기하고, 히죽 웃으며 집게 같은 손으로 하늘소를 집어 들었다.

하늘소는 그 이상한 뿌리를 총 동원해 버둥거렸다. 누군가 호텔 식당에서 커다란 컵을 가져왔고 장수하늘소는 체면이 말이 아니게 컵속으로 이동됐다. 종이로 아구리를 막았다. 공기구멍을 가득 냈으니 불편하기는 해도 숨쉬는 데는 문제없을 것 같다.

7월 27일, 이튿날 아침이다.

떠날 준비를 하고 문밖에 나서니 비가 크게 쏟아진다. 장대비였다. “하늘소를 놓아주었어요?” 라고 물었더니 아직도 컵 속에 있단다. “하늘소가 컵속에 있으니 비가 내릴 수밖에…” 라며 나는 하늘소의 곤란한 입장을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