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한참을 달려 이도백하 구역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도로검사소에서 제복을 입은 직원 2명이 나오더니 차를 멈춰 세운다. 비포장 도로여서 비가 내리면 길이 상하기에 차의 통행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큰일이었다.
창밖으로 동우당 제약회사와 거래관계가 있는 한족 안내원 오명주(吳明柱) 씨가 검사소 직원들을 설득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보인다. 비가 그의 머리와 어깨를 적셨다. 동우당 제약회사 都이사도 차에서 뛰어내려 검사소 직원을 설득했다. 비가 더 크게 내리자 그들은 다 같이 도로검사소의 자그마한 건물 속으로 들어갔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도이사와 오명주 씨가 나왔다. 다행히 그들의 얼굴빛은 개어있었다. 끝내 통행이 허가된 것이다.
차는 다시 시동을 걸고 앞으로 달렸다.
양 켠에 수림이 우거진 도로였다.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들이며 이름 모를 꽃들이 비속에서도 배시시 웃고 있었다. 일행 중에 길림신문사의 주임으로 있었던 최광춘 선생이 있었는데, 그는 이 곳의 하마유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마는 개구리과 동물인데 암컷의 말린 수란관을 하마유라고 한다. 이는 고영양가의 보신제이다. 보신익정, 윤폐양음(補腎益精, 潤肺養陰)한다고 한다. 500g당 지금은 수 천위안(한화 수 십만원)에 상당한 고가보신약재이다. 연길 시장에는 한동안 북한에서 수입된 하마유가 중국 시가보다는 싼 가격에 팔렸었다. 그러나 그것도 곧 고가로 치달았다.
하마유의 중국 주요 산지는 동북삼성, 즉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이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잡은 것이 가장 좋단다. 가을이면 하마가 이 길옆에 쫙 깔리곤 했는데, 최근에는 잡는 사람이 많아서 많이 적어졌다고 한다. 수컷들은 모험을 즐기기 때문에 먼저 수림 속에서 나와 길에 납작하니 엎드려 동정을 살피곤 한단다. 자연히 위험에는 먼저 직면하게 된다. 차의 수량이 많아지면서 수컷들이 불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암컷들은 보통 수림 속에 숨어있다가 수컷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판단한 후에야 슬금슬금 나온다고 한다. 사실 암컷들의 가치가 수컷에는 비할 수 없이 크기 때문에 보호본능에 의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무도 머리가 있다는 신 교수의 말씀을 빈다면 하마도 머리가 있는 것이다.
일행은 앞을 내다보다가 다 같이 웃었다. 우산 하나가 활짝 공중에 떠있고 그 밑에 사람 넷이 한 묶음처럼 딱 붙어서 서있다. 차를 기다리는지 도로변에 까딱 않고 서있었다. 시골의 따뜻한 인심을 말해주는 정겨운 모습이다. 그 모습이 어떤 도로표지 같기도 하고 커다란 버섯 같기도 했다. 현대빌딩이 숲을 이루고 샐러리맨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현대화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일행은 차의 속도가 빨라 촬영 타이밍을 놓친 것을 크게 아쉬워한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렸다. 노수하진(露水河鎭)에 이르렀을 때는 도로에 물이 가득 고여 있다. 노수하는 같은 길림성에 속하지만 연변은 아니다. 길림성 통화지구에 속해있다. 노수하는 삼을 망라한 약재가 유명해 ‘장백산 약원(藥園)’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다. 국제수렵장이 유명하고 또 중국 최대 홍송 임장(林場)을 가지고 있다.
‘中藥趣話(중약취화)’에는 “1989년 8월에 방산인(심마니) 3명이 길림성 무송현 노수하의 원시삼림에서 산삼 한 뿌리를 캤는데, 인삼전문가의 감정에 의해 이 야산삼의 중량이 305kg, 적어도 500여 년이 지난 산삼이라고 인정됐다. ‘기보(奇寶)’로 인정된 이 특대 노산삼(老山蔘)은 삼형이 극히 우수하여 국내외에서 사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몇 만 원에서 십몇 만 원, 수십만 원으로 값이 치달았는데, 이름을 밝히기 싫어하는 한 홍콩상인에 의해 108만위안(현재 환율로 1억 5천500만원 가량)에 팔려 국내에서 최고가 기록을 했다.”
라고 기록돼있다. 우리가 가야 할 대릉장산은 노수하에서 멀지 않아 차로 한 시간거리에 위치해 있다.
길 옆 화장실로 뛰어들어 볼일을 보고 나자 모두 편안한 표정으로 ‘장백산 특산물’ 간이상점으로 다가간다. 산들이 가득한 도로 중간에 설치된 특산물 매대이다. 인삼, 녹용과 기타 약재들, 골동품과 기념품들이 가득했다. 모두의 눈길이 자연히 인삼 매대로 다가간다. 한 한족 장년이 인삼 하나를 들고 25년 생이라고 했다. 모두들 신 교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신 교수는 인삼을 공중에 치켜들고 한참 여겨보더니 정말로 25년생이 맞다고 했다. 인삼들은 모두 잘 생기고 튼튼하고 싱싱했다.
빗물에 끊어진 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 몇 군데를 지나왔다. 기사의 얼굴에 긴장이 어린다.
이도백하에서 3시간 반이 돼서야 목적지 대릉장 부근에 도착했다. 다른 때 같으면 2시간 반이면 도착한다고 했다. 기사는 더는 앞으로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차를 멈춰 세웠다. 대릉장까지 가자면 도보로는 한참 가야 한다. 그런데 앞에 한 구간의 길이 뭉청 물에 밀려있었다. 물이 길 허리를 뭉청 자르고 콸콸 쏟아져 내렸다.
동우당 제약회사 측에서 준비를 잘 한 덕에 모두들 비닐 옷을 든든히 입고 우산을 들었다. 처음에는 신을 적시지 않으려고 까치 뜀을 하다가 곧 체념하고 첨벙첨벙 물에 들어섰다. 기사는 될수록 빨리 오라고 신신당부한다. 자칫하면 돌아갈 길이 막힌다는 것이다. 기사를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길을 닦을 때까지 산골에 갇혔던 경험이 적지 않다고 한다.
“골물이 터지는 건 한 순간의 일입니다. 길이 밀리면 차도 위험합니다.” 라고 기사가 초조하게 말했다. 그렇게 되면 신변이 위험할 뿐 아니라, 이튿날 저녁 연길에서 떠나기로 계획된 허담 원장, 신민교 교수 등의 비행기표도 나무아미타불이 되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