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하게 지내는 모 중소기업 P사장이 꾸부정한 자세로 연방 ‘아이구 허리야, 아이구 허리야!’ 하면서 진료실로 들어왔다. 손님 접대 차 골프를 치다가 9홀도 채 못 돌고 한의원으로 직행한 것이었다.

요즘 40대 중반이 넘은 환자들 가운데 P사장처럼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한의원을 찾아오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허리가 아픈 것은 내 몸의 대들보가 무너지는 전조로 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보다 건강이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건강할 때는 재물 모으기에만 급급하다. 그러나 대들보가 허물어져 지붕이 내려앉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요통의 원인은 많지만 현대인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 가운데 하나가 ‘신허요통(腎虛腰痛)’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신장의 기능이 약해져서 생기는 병이다. 한방에서 허리는 신(腎)에서 기운을 받는다고 본다. 여기서 신이란 신장과 방광의 기운을 포함해 생식·정력·골수 등을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용어다.

신허요통이 생기면 같은 자세로 오래 있지 못하게 된다. 누워만 있어도 허리에 통증이 온다. 쉽게 허리를 삐어 자주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다리는 저리고 아플 때가 많다. 누웠다 일어나면 발바닥에 통증이 생겨 절뚝거리다 풀어지기도 한다. 정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아랫배가 냉하고 더부룩해 영 편치 않다.

신장의 기능이 손상되는 원인은 실로 다양한데, 스트레스·흡연·과음 등에 노출된 현대인의 생활습관과 무관하지 않다. 과도한 성관계나 지나친 운동도 신장에는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신허요통을 다스리기 위해선 신장의 기능을 강화시켜 허리로 가는 기혈을 보강해야 한다. 전문적으로 말하면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이나 숙지양근탕(熟地養筋湯) 같은 한약을 장기간 복용해 근본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육미지황환은 산약과 산수유, 숙지황을 사용한 일종의 보음제로 허약해진 신장의 기능을 돋우고 골수를 윤택하게 해준다. 우슬과 두충, 숙지황이 주재료인 숙지양근탕 또한 신허로 인해 허약해진 근골격을 튼튼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신허요통에는 특히 녹용이 좋다. 녹용은 골수를 보하고 근골을 튼튼하게 하며 생식 기능을 증강시키는 약리 효과가 있다. 또 조혈작용, 면역 증강, 간기능 개선, 항스트레스 기능 강화 등의 작용을 하므로 인체의 근본적인 힘을 강하게 한다.

녹용은 추운 지방에서 방목 상태로 사육된 것이 좋다. 대표적인 산지는 시베리아의 알타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러시아 녹용과 남극과 가까운 뉴질랜드의 남섬에서 방목 사육되는 뉴질랜드 녹용을 최상품으로 친다. 암놈 중에도 뿔이 있는 알래스카 순록은 약용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한방에서 녹용은 보약이나 치료용으로 아주 중요하게 사용되는데 의약품으로써의 약전기준에 부합되는 녹용을 사용해야 한다. 생산·채취·건조·가공에 이르기까지 의약품으로 관리되지 않으면 기생충 감염, 녹혈의 변질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약 1제 분량(20첩)을 달이는 기준으로 준비된 녹용 150g을 2~3시간 먼저 녹여 녹용의 약성이 우러나오면 그 약물에 신허요통에 사용되는 한약재를 함께 넣어 두 시간 정도 다시 끓여 팩에 담아뒀다가 복용하면 된다.

허리가 아플 때 반신욕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신허요통 환자의 경우엔 오히려 기가 빠져 더 악화될 수 있다. 보음 효과가 있는 호두와 검은깨를 자주 먹거나 두충이나 구기자를 차로 만들어 마실 것을 권한다.

0 답글

댓글을 남겨주세요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