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약사가 건네준 산제는 티스푼 반 정도의 양이지만 차로 마실 수 있을 만큼 향미가 부드럽고 목넘김도 좋았다”

마치 한 잔의 차처럼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제형으로 산제(散劑)를 주목해 본다.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한의사에게 친숙한 제형으로 환제와 산제가 있다. 그렇지만 개원가에서는 한약을 약탕기에 달여주는 방식이 그동안 유행하였으므로 환제와 산제에 특별히 관심 있는 한의사가 아니라면 잘 응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은교산 추말.

제형을 연구하다 보면 각각의 제형은 거기에 맞는 적합한 용도가 있다. 산제로 처방명이 된 것을 아무 생각 없이 탕제로 변화시키고 게다가 약탕기에서 서너 시간 푹 달이는 것은 방의(方意)에 맞지 않는다.

씹어 먹을 수 있는 탄자대 크기의 환이 아니라 녹두대와 오자대 크기의 환제는 보통 물과 함께 빠르게 입 속을 통과하여 위장관에서 오랫동안 풀어지며 조금씩 서서히 약효를 발휘하기 때문에 보통 완만하고 만성적인 질병에 쓰이거나 보익양생을 위한 제형으로 쓰인다. 그래서 본초서에 ‘丸者는 緩’이라 하였다.

오적산 세말.

반면 산제는 거칠게 추말하여 약재의 표면적을 넓혀 센 불에 빠르게 달여 먹거나, 아니면 세밀하게 분말하여 약재를 통째로 먹게 하였다. 약재를 세말하여 가루로 먹게 되면 입안의 점막에서 흡수가 시작되어 목, 식도, 위장관에 도달할 즈음이면 벌써 흡수가 끝난다. 그 만큼 약효의 전달이 빠르고 특히 약이 직접 닫는 입안이나 인후의 염증으로 부어있는 질병에는 더 없이 좋은 제형이다. 그래서 ‘散者는 散이라’ 하였고 急迫한 질병에 주로 응용된다 하였다.

오적산으로 만든 한방차.

차제(茶劑)와 함께 한의원에서 즉석에서 응용할 수 있는 제형을 연구하면서 산제의 응용방법에 주목했다. 한의원에 환자가 내원했을 때 침구치료 중 또는 잠깐의 대기시간에 우리가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이 많으면 많을수록 치료효과 내지는 환자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다. 광고를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용각산은 길경과 감초가루가 주 성분인 산제이다.
작은 숫갈로 입 안에 털어 넣으면 미세한 분말과 특유의 화한 향이 입 안에 퍼진다. 가끔 가루가 기도로 들어가 사래가 들리듯 기침하는 것이 불편하여 수저에 개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작은 양이지만 향미는 오랜 동안 입 속에 남아 입안을 개운하게 한다.

이러저러한 약재들을 미세분말하면서 연구하는 동안 탕전실의 소약사가 산제(散劑)를 한 잔의 따뜻한 물에 태워먹는 것을 권했다. 소약사가 건네준 산제는 티스푼 반 정도의 양이지만 차로 마실 수 있을 만큼 향미가 부드러우며 목넘김도 좋았다.

아! 이것이 방법이 아닐까. 한의원에서 미흡했던 즉석 처방의 방안으로 산제를 응용하고, 복용은 마치 한 잔의 차처럼 가볍게 접근하게 하면….

허담/ 한의사. (주)옴니허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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