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다섯시 김단주의 은사님을 만나기 위해 다시 북제주로 돌아 왔다.

그러나 기실은 은사님이 우리를 안내한 곳은 7년째 유기농업으로 온주 밀감을 재배하시는 신부님 댁이었다.
아마 선생님께선 우리가 미리 설명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밀감의 껍질을 진피로 생각하시고 정성 들여 귤을 재배하시는 신부님댁의 귤이 약용으로 적합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우리를 부르신 모양이었다. 그 댁에서 재배하는 귤은 껍질째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제주도에 토박이로 계시는 분들도 산물에 대한 이야기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어디에 가야 산물이 있는지 아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결국 전문가 몇 분만이 산물의 존재와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정도이다.
육지에 있는 우리 한의사들이 이 정보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겠지.

신부님 댁에서 비파열매로 담근 화채를 먹고 나오니 술시가 가까워졌다.
진피를 찾았다는 흥분으로 곁눈질로만 끝낸, 바다가 보고싶었다. 제주의 바다는 육지의 바다와 느낌이 다르다. 특히 어둠이 막 내려앉을 무렵, 비보라가 몰아치는 회색빛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내 가슴속에도 같은 모양의 파문이 인다. 흐느끼는 영혼의 모습일까.


고 선생을 채근하여 파도치는 바다가 보이는 횟집으로 가자고 했다. 예상대로 바다는 역시 회색빛 바다에 비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그날 밤새 무슨 소리를 지껄였는 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음울한 회색빛 바다의 잔영은 술 취한 내내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비는 깨끗이 그쳐 있었다. 어제 김 박사에게 들은 애월읍 상가리에 있다는 최고령의 산물을 찾아가기로 양단주와 미리 약속을 해 둔 터라 관덕정으로 나갔다. 애월의 상가리는 제주의 오래된 시골 마을이었다.
비온 뒤의 깨끗함이 제주의 돌담과 초가에 어울려 술에 쩔은 머리 속을 씻어주는 느낌이다. 근 한시간이나 수소문한 끝에 강할아버지의 댁을 찾을 수 있었다. 사백년의 고가에 13대째 살고 있다는 강할아버지의 집뜰에 그 나이만큼의 진귤나무 세 그루가 있었다. 1988년 북제주군수가 수령 350년을 보증하고 보호수목으로 지정해 둔 진귤나무다.

눈앞에서 진피의 원형을 대하는 감동이라니!

고목의 등엔 일엽초가 더불어 집을 짓고 있었다. 산물의 잎을 뜯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온주밀감의 잎보다 가는 편이고 잎끝이 뾰족하고 크기도 작은 편이다. 온주밀감의 잎이 두리뭉실하여 둔해 보인다면 산물의 잎은 날렵하고 또렷한 느낌이랄까. 온주밀감의 잎을 부비면 밀감의 냄새가 나지만 산물의 잎에선 밀감냄새가 나지 않는다. 대신 아득한 옛부터 우리의 약초로 우리와 삶을 같이 한 운명적인 냄새가 난다.

後記

그 뒤 중국의 남방지역을 돌아 다녀 보면서 귤에 관심을 갖고 여러 사람들에게 중국 진피의 원형이 무엇일까 하고 탐문하여 보았지만 아는 이가 없었다. 대부분 먹는 귤껍질을 진피로 이해하고 있었고 종간의 구별은 대수로이 생각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난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산물 즉 진피는 우리나라 제주도에만 남아 있는 진피의 원형으로 보인다. 식용으로서가 아니라 약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귀한 약용자원이니 더 이상 베어져서 사라지기 전에 재배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관단체에서 관심을 가진다면 일개 읍 정도 크기의 재배면적 만으로도 수출도 가능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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