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 캐는 날

작약은 다른 농작물처럼 몇 달만에 또 1년만에 수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 3년, 보통 4~5년 이상을 가꾸고 돌봐야 비로소 약성 강한 굵고 향기 좋은 작약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남들은 몇 달만에, 길어야 1년만에 수확을 하는데 4~5년 이상을 기다려 수확을 하는 농민의 마음, 농심(農心)은 어떨까요? 병충해라고 입을까. 가물면 가물어서 걱정. 비가 많이 오면 비가 와서 걱정. 그 몇 년간 마음 한번 편히 두지 못하고 작약밭에 매달려 지냈을 테니까요.

9월말 10월 초순경에 작약을 캡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죄다 동원되지요.

4~5년 이상씩 묵은 뿌리다 보니 사람 힘으로 캐면 하루 종일 캐야 고작 한두 뿌리밖에 캐지 못합니다. 그래서, 포크레인이 동원됩니다.

캐낸 작약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포크레인까지 동원해 캐낸 작약은 다시 사람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노두는 잘라서 다시 심어야 하니까 약재로 쓸 부분만 떼어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가마니에 담아서 작업장으로 옮기고, 세척한 다음 양건을 하고 다시 절단하여 완전히 말리면 훌륭한 약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포크레인으로 캐내어져 마대에 담긴 후 트럭에 실려 작업장에 쏟아진 작약더미들…

이제는 사람의 손길이 가야합니다.

한 둥치 한 둥치 붙들고 약으로 쓸 뿌리줄기를 잘라냅니다. 그러고 나면 뿌리가 모여서 나누어졌던 원 둥치부분이 남습니다. 거기에는 겨울눈이라 말할 수 있는 이듬해 봄에 돋아날 ‘촉’이 있습니다. 이는 가을, 겨울 동안 뿌리로 모은 기운을 이듬해 봄 다시 뿜어내기 위한 준비입니다.

그걸 여러 개로 쪼개서 밭에 나눠 심으면 새로운 작약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작약의 일생은 이와 같이 단절없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CYCLE의 형태를 갖습니다. 인간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신은 사라져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겠지요.

다만 꽃이 진 후 결실한 씨앗에 의해 번식하지 않는 이유는 우수하고 순일한 형질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작약은 그 생태상 잡종이 잘 생겨나서 형질에 변화가 많기 때문이랍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조의 과정은…

태양과 시원한 바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혹시라도 깨끗하고 하얗게 건조된 약재가 좋다는 인식에 의해 자연건조 – 양건(陽乾)이라고 합니다.-를 외면하고 건조기 등을 이용해 억지로 건조시키는 경우가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고추 같은 것만 보더라도 태양초라 하여 자연 건조한 것이 비록 모양은 그만 못할지라도 맛과 향이 월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약재도 마찬가지지요.

될 수 있으면 자연건조된 약재가 가장 약성을 제대로 발취할 수 있고 또 가장 효과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낫을 수 있습니다.

작약은 채취한 다음에 곧장 절단되고 또 건조되지 않습니다.

마르기 전에 절단하면 일이 쉽고 또 건조에 들이는 노력이 훨씬 절감됩니다만 약효의 손실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신 약재를 자연적인 건조방식으로 어느 정도 말린 다음 꾸덕꾸덕할 때 절단하여 다시 햇볕과 바람을 이용해서 야외에서 건조시키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한약재 작약은 편하고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작약 뿐 아니라 모든 한약재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똑같이 생산되는 공산물이 아닙니다. 비록 사람이 인위적으로 재배하는 측면이 있지만 엄연한 천연물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살아있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고 농민의 뜻대로 항상 풍작을 기약해 줄 수 없습니다.
다만 하늘에 기도하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 농사를 지을 뿐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고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3년을 재배한 작약보다 4년을 재배한 작약이 좋습니다. 그보다는 5년, 그보다는 6년을 재배한 작약이 더 좋습니다. 5년,6년의 농사가 쉽지 않지만 아직 주변에는 힘들어도 좋은 약재 생산을 위해 애써주시는 농민이 많이 계십니다.

어렵게 생산된 약재는 다시 정성을 담아 가공되어져야 합니다.

깨끗이 세척하여 좋은 환경에서 자연 건조되어야 합니다.

그리곤 다시 절단되고 완전히 마를 때까지 대차 건조되어야 합니다.

그 이후에도 청결히 관리되어 한의원의 약장까지 나와 환자에게 처방하는 첩약이나 탕약에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어느 과정과 어느 절차 하나도 쉽지 않습니다만 사람을 치료하는 약재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정성이 기울여져야 가장 효과 좋은 약재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입니다.

9월이 되면 작약의 잎들은 초라하게 시들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사람의 손과 포클인이 필요합니다. 작약의 약성이 가장 우수할 때이기 때문이지요.
제대로 재배되고 가장 적합한 시기에 채취되어 건조중인 작약입니다. 단면이 굵고 희며 향기가 강한 것이 가장 효과가 뛰어납니다.
‘가래’라고 하여 작약 등의 뿌리 약재를 자연 건조시키기 위한 기구입니다. 여기에 가지런히 약재를 널고 자주 자주 뒤집어 주어야 합니다. 비라도 올라치면 얼른 걷어야 하는 등 손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가장 좋은 약성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작약의 효능

본초학이라고 하면 한약재로 사용되는 식물, 동물, 광물 등에 대한 효능과 성상, 기원식물 등 밝혀 놓은 학문을 말합니다.

그 본초학에서 작약이라는 약재를 찾아보면 그 효능으로는 養血柔肝, 緩中止痛, 斂陰收汗 등이 언급되어 있고 주요 치료 적응 증으로는 胸腹脅肋疼痛, 瀉痢腹痛, 自汗盜汗, 陰虛發熱, 月經不調, 崩漏, 帶下 등이 나와 있습니다(本草學 – 永林社 참고)

하지만 이런 설명보다는 화단에 심겨 있고 밭에 가꾸어지는 식물 작약을 있는 그대로 보고 한 생명체로서 바라보면서 그것의 한약재로서의 가치를 유추해보는 것도 나름의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을 견딘 기운이 있습니다.

이 때 작약의 생명력, 기운은 외부 환경과 더불어 움츠리는 방향성을 갖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봄에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겠지요. 즉 오히려 작약은 그와는 반대 방향의 힘을 갖고서 팽팽하면서도 치열한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작약을 한의학에서는 보이는 그대로 이용합니다.

인체의 바깥부분이 마치 겨울처럼 얼어있고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 바깥으로 뻗어 올릴 수 있는 힘이 부족할 때 작약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봄이 되어 그것도 붉은 빛을 띤 채 솟아오르는 힘 , 그리고 붉은 줄기와 잎은 그대로의 피(혈액)의 모습입니다. 혈액의 부족을 보충해주고 활짝 펼쳐지듯이 혈액의 순환을 보조해 줄 수 있으리라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사람이 정신적으로 억눌리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기운을 제대로 펼치지 못할 때에 – 한의학적으로는 肝氣가 抑鬱되어 있다고 합니다. – 작약의 기운에 힘입어 한껏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서 소통시키는 힘이 강한 작약은 인체 내에서 기혈이 막혀서 유발되는 각종 통증도 다스릴 수 있고 신맛 때문에 땀이나 진액의 유실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온전한 작약의 가치를 발휘하고 약재로 훌륭히 쓰이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씀드리고 사진으로 보여드린 바와 같이 정성껏 그리고 안전하게 재배되고 관리되어지며 채취, 절단, 건조, 포장 등 일련의 과정이 올바르게 시행되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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