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이형이 한국에 잠시 다니러 왔을 때 죽력 1병이랑 진피 1근을 선물했다.
늦은 나이에 이국에서 한의사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그에게 뭔가 특별하고도 강한 무기를 쥐어주고 싶었다.
마치 그의 노랫가락처럼 돈키호테 같은 인생을 살아온 그이지만 한의사로서의 새로운 출발은 또한 많은 어려움이 있으리라. 죽력 1병과 진피 1근이 무어 그리 그에게 큰 도움이 되겠냐만은 한의사 생활 십 수년에 내가 갖고 있는 부적과도 같은 내 마음의 인사였다.

학창시절부터 사람을 좋아하고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습성 때문에 술은 늘상 나에게 마시냐 아니면 참느냐의 문제를 제공하곤 했다. 그 결과 이젠 몸이 점점 망가져 술병이란 이렇게 오는구나를 직접 체험한다.


한의사의 강한 무기로 부적처럼 건네줄 정보로 진피를 중히 여기는 것은 오로지 몸으로 느낀 경험에서다. 과음한 뒷날 머리와 몸뚱이가 따로 놀며 속이 거북하고 가스가 가득 차 방귀도 안되고 트림도 안되며 뱃속이 오로지 혼돈 속에 빠져있을 때 나는 진피를 차로 달여 먹는다. 진피일물탕이다. 한잔을 마시고 또 한잔을 마시고 몇 잔의 지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뱃속이 평정된다.

많은 약재를 달여 먹어 보지만 진피만한 것이 없었다. 진피를 달여 먹으면서 술병의 최고의 처방이 대금음자임을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처방이다.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면 누구나 대금음자를 술병에 쓴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막상 임상에서는 대금음자를 쓰지는 않는다.

군약이 진피3돈인데 시중에 도는 귤껍질을 주약으로 삼기가 뭣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시중에 도는 귤껍질을 진피를 달여 먹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리가 진피를 빼고 기병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기체, 기울, 기통, 중기 등등 각종의 기병에 진피가 들어가지 않는 처방은 몇 되지 않는다. 동의보감에 귤피 1량으로 일체의 기체, 기결을 풀어낸다는 귤피일물탕을 들지 않더라도 진피 하나만 바르게 쓴다면 질병의 절반정도는 해결할 수 있겠다는 말이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산물’은 대단한 의미이다. 기록에 의하면 일본의 문헌인 비후국사에서   삼한에서 귤을 수입했다는 기록과 고사가 일본 서기에 지금의 제주도인 상세국으로부터 귤을 수입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제주도에선 삼국시대 때부터 귤을 재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물’은 오랜 세월동안 제주도에서 자생해온 재래종 귤나무의 일종으로 보인다. 예로부터  신기한 과일로 조정에 진상되어 왔고 껍질은 뛰어난 약재로 중국에까지 수출하였다고 한다.
예전에 제주도에선 집안에 귤나무가 있다는 것은 곧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연배가 드신 제주도   어른들에게‘산물’이 무어냐고 여쭈어보면 대개가 아신다. 어릴 적 한두 번은‘산물’의 신세를 지고 병이 나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소감소체를 떠나 여러 잡병에 이르기까지‘산물’의 껍질은 당장 아쉬운 구급약으로 또는 민간약으로 제주도 토박이 분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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